▲경기 화성시 동탄역 일대 전경. GTX-A와 SRT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 배후 주거지로 성장한 동탄은 최근 규제지역 지정에도 실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오늘은 전화도 거의 없네요.”
지난 5일 오후 찾은 경기 화성시 동탄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정부가 동탄을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가 시행되는 첫날 중개업소 안은 예상보다 한산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규제 시행 전에 본계약을 앞당기려는 손님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도 이미 예상됐던 만큼 살 사람은 대부분 지난주에 계약을 마쳤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동탄과 용인 기흥, 구리를 규제지역으로 지정하고 5일부터는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갭투자가 사실상 막히고 대출 규제도 강화됐지만 현장 분위기는 지난해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당시처럼 급격히 얼어붙은 모습과는 달랐다. 시장은 규제 발표 이전부터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동탄역에서 롯데백화점을 지나 시범단지 방향으로 걸었다. 일요일 오후였지만 회사 배지를 목에 건 직장인들이 거리 곳곳을 오갔고 카페에는 노트북을 펼친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역 앞 광장은 차분했지만 도시의 리듬은 분명 삼성전자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동탄역 인근 더샵 아파트 단지 전경.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 직주근접 수요가 이어지는 대표적인 ‘셔세권’ 단지로 꼽힌다. 사진=장혜원 기자
이 분위기는 중개업소에서도 그대로 확인됐다.
한 공인중개사는 기자에게 가장 먼저 “삼성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이어 “동탄에서는 어느 회사 셔틀버스를 타느냐가 집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며 “삼성전자 화성·기흥·평택캠퍼스로 가는 셔틀버스 정류장과 가까운 단지는 꾸준히 문의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셔세권’이다. 역세권보다 기업 셔틀버스 접근성이 더 중요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동탄역 인근 단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 종사자들의 실거주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생성형 AI 확산으로 반도체 업황 회복 기대감까지 커지면서 고소득 직장인들의 주택 수요가 시장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 동탄역 롯데캐슬 전용면적 84㎡는 최근 22억25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다시 썼다. 규제 발표 이후에도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가격을 쉽게 낮추지 않는 이유 역시 이러한 실수요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동탄역을 중심으로 한 시범단지는 도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롯데백화점과 SRT, 향후 GTX-A가 연결되는 동탄역은 도시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역과 상업시설, 주거단지가 지하 통로와 보행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새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었다. 동탄대로와 동탄순환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범단지는 생활 인프라와 교통 여건이 가장 먼저 갖춰진 핵심 입지로 평가받는다.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동탄역을 중심으로 GTX-A와 SRT, 반도체 산업 배후 수요가 맞물리며 수도권 대표 신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삼성·SK 출퇴근 수요가 만든 실수요 방어선
반면 남동탄 호수공원 일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호수를 따라 산책하는 주민들과 대형 카페, 상가가 이어졌고 린스트라우스와 부영 단지 등은 호수 조망과 교육환경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한 주민은 “서울처럼 답답하지 않고 공원도 많아 아이 키우기 좋다”며 “삼성으로 출퇴근하기도 편해 굳이 서울로 갈 이유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동탄이 단순한 베드타운이 아니라 산업도시라는 점은 도시 곳곳에서 확인됐다. 북쪽으로는 판교와 분당, 남쪽으로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산업단지가 이어지는 경부축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GTX와 SRT로 서울 접근성도 뛰어나지만, 정작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직장과의 거리였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최근 동탄 집값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로 ‘일자리’를 꼽는다. 과거에는 지하철 노선이나 개발계획이 집값을 좌우했다면 지금은 반도체 산업과 AI 투자가 도시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성과급 기대가 높아지고, 이러한 소득이 다시 산업 거점 주택시장으로 유입되는 구조가 동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매매시장과 달리 전세시장은 여전히 견조한 모습이다.
서울 전셋값 부담이 커지면서 광명, 동탄, 수원 영통, 안양 동안, 용인 기흥 등 서울 접근성이 좋은 경기 남부 지역으로 전세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화성 동탄구 아파트 전셋값은 8% 넘게 상승하며 전국 상위권 상승률을 기록했고, 경기도 전세 매물도 지난해 말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동탄역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매 문의는 줄었지만 전세를 찾는 손님은 꾸준하다”며 “서울 전세가 부담스러운 신혼부부나 삼성·SK 계열 직장인들이 동탄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매매가 막히면 실거주 수요가 전세시장에 머물면서 전세 매물이 더 줄 수 있다”며 “전세가격이 받쳐주면 집주인들도 호가를 쉽게 낮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규제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동탄1신도시 중개업소들은 “최근 가격 상승은 사실상 동탄2가 주도했는데 동탄1까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 것은 다소 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탄2 주민 역시 “올해 초만 해도 10억원 안팎에 거래되던 단지가 최근에는 12억원대까지 오른 곳도 있다”며 “동탄역 인근 대장 단지뿐 아니라 외곽 단지까지 가격이 빠르게 따라붙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동탄 개발사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동탄2 트램도 최근에는 착공을 전제로 한 행정 절차와 사업비 조정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며 “GTX와 SRT에 트램망까지 더해지면 동탄2 내부 이동성과 동탄역 접근성이 한층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동탄 집값의 핵심은 동탄역 접근성과 반도체 직주근접성”이라며 “트램이 실제 착공하면 호수공원과 남동탄 등 동탄역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진 생활권에도 교통 프리미엄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경기 화성시 동탄호수공원 일대 전경. 동탄역과 반도체 산업 배후 수요를 기반으로 호수공원 생활권까지 주거 선호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GTX·SRT·트램 기대감에 전세난까지 겹친 동탄 시장
반면 투자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적지 않았다.
동탄에 10년 넘게 거주한 한 주민은 “성과급 기대감이 집값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모든 단지가 똑같이 오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동탄은 면적이 넓어 동탄역과 시범단지, 호수공원 일부처럼 입지가 확실한 곳과 외곽 단지의 온도 차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 직원들도 동탄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망포, 영통, 광교, 분당, 수지 등으로 분산돼 거주한다”며 “성과급을 받으면 오히려 상급지로 갈아타는 수요도 있는 만큼 단순히 반도체 효과만 믿고 외곽 단지까지 따라 사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가격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라 매수자들이 쉽게 따라붙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며 “호가는 버티고 있지만 거래는 줄어든 만큼 당분간은 가격 조정이나 횡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황은 아니라 급락보다는 거래 공백 속에서 눈치 보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실거주 수요가 확실한 단지와 호가만 앞서간 단지는 앞으로 차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