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폭염(사진=AP/연합)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유럽에서 기후변화가 경제 성장 전망을 위협하는 중대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 핵심 경제국인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폭염에 따른 피해가 잇따르면서 지구온난화가 초래하는 경제적 충격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보험사 알리안츠는 최근 폭염의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EU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오는 2030년까지 약 1300억달러(약 192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프랑스의 예상 손실 규모는 2400억달러(약 355조원)에 달한다.
알리안츠의 이 같은 추정치는 2014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폭염의 경제적 비용을 토대로 향후 피해 규모를 산출한 것이다.
알리안츠의 하젬 크리셴 선임 기후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분석 결과가 자사 이코노미스트들에게도 예상 밖이었다고 설명했다. 폭염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피해 규모가 이 정도로 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리안츠는 폭염이 경제에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온 상승으로 자본의 기대수익률이 하락하면 투자가 줄어들고, 이는 다시 경제의 생산능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에서도 폭염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 버던트는 지난 6월 영국을 강타한 폭염으로 발생한 경제적 비용이 최소 23억6000만파운드(약 4조68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고온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와 사회기반시설 및 장비 고장 등에 따른 피해를 반영한 결과다.
버던트는 폭염이 지난 10년과 같은 속도로 계속 심화할 경우 오는 2030년까지 매년 여름 발생하는 무더위로 인한 누적 경제적 손실이 최소 250억파운드(약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폭염이 유럽 경제 전반의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공동으로 참여한 지난해 여름 폭염 관련 분석에 따르면 유럽 경제는 폭염으로 전체 생산의 0.3%에 해당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됐다. 이러한 경제적 손실은 오는 2029년까지 누적으로 0.8%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2030년까지 주요 EU 회원국별 폭염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 유럽 주요 경제국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단위=10억달러, 자료=블룸버그)
◇ “전쟁보다 더 무섭다”…식품물가 끌어올리는 폭염
이와 동시에 폭염은 특히 식품 물가에 강한 상승 압력을 가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경제 성장률은 둔화하는 반면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고온과 가뭄 등 기상 요인만으로 내년 식품 물가상승률이 최대 1%포인트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토마스 드보락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올여름 폭염이 이란 전쟁보다 내년 식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더 강력한 상승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크 엘더슨 ECB 집행이사 역시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폭염과 인플레이션, 국내총생산(GDP) 등 주요 경제지표 간 연관성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엘더슨 이사는 “이례적으로 더웠던 2022년 여름을 생각해보면 당시 식품 물가상승률이 0.4~0.9%포인트 높아졌고 독일 GDP에도 상당한 수준의 충격이 있었다”며 “이러한 요인들은 서로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다.
ING의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글로벌 거시경제 총괄은 올여름 유럽을 강타한 폭염이 “유럽의 모든 정책 입안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극단적인 고온 현상이 유럽 전역을 완전히 휩쓸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앞으로 거시경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 기온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이제 온도계도 선행지표가 됐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폭염(사진=AP/연합)
◇ 6월 최고기온 2년 연속 경신…유럽 폭염 일상화
실제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고온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지난달 서유럽의 평균기온은 20.74도를 기록했다. 이는 1991~2020년 30년간 평균보다 3도 이상 높은 수준으로, 관측 사상 가장 더운 6월로 기록됐다. C3S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일부 지역 등을 서유럽으로 분류한다.
지난달 서유럽의 평군기온은 종전 최고 기록인 지난해 20.49도마저 넘어섰다. 지난달 말에는 서유럽 각국의 기온이 40도 넘게 치솟았다. 이로 인해 유럽 주요 관광 명소는 조기 폐관하고 원자력 발전소는 가동을 멈춰 전력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6월 평균기온이 2년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유럽에서 6월 폭염이 일상화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폭염에 따른 인명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 당국이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올여름 들어 현재까지 폭염으로 유럽에서 이미 1만3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유럽 대부분의 주택과 사회기반시설이 추위에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는 점이다. 매년 극심한 더위가 반복되면서 이제 유럽의 인프라는 혹한뿐 아니라 극한의 폭염까지 견딜 수 있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크리셴은 “불과 20~30년 사이 기온이 매우 빠르게 변화했다”며 “그 결과 도시 인프라가 폭염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이 기온 상승에 따른 피해에 적응하기 위해 오는 2050년까지 매년 약 700억유로(약 118조원)를 투입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사디크 칸 영국 런던시장 역시 런던에서 폭염에 가장 취약한 주택들을 극단적인 더위로부터 보호하는 데만 약 90억~450억파운드(약 17조원~89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