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을 두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데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 모두 핵심 쟁점에서 물러서지 못하면서 교착 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그들이 참수되기 전까지 모든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다”며 “오늘이나 내일이면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그렇게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의 요청에 따라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번이 그들(이란)이 좋은 문서(합의문)에 서명할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 계획을 철회하고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직후 나왔다. 대규모 군사작전을 예고한 뒤 외교적 해법을 이유로 공격 계획을 접고 다시 협상 압박에 나서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전략을 반복한 셈이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을 전면 부인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현재 미국과 어떤 협상도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예정된 회담도 없다”며 “향후 며칠 동안 외국 대표단을 초청하거나 협상단을 해외에 파견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바가이 대변인은 현재 이란 협상단은 모두 국내에 머물고 있으며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만 이라크에서 종교 순례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진행 중인 대화는 오만과 호르무즈 해협 관리 방안을 논의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 지도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중적”이라며 “이란이 먼저 회담을 요청했고 가까운 시일 내 추가 협상도 예정돼 있다”고 반박했다.
로이터는 이 같은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이 약 5개월 전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공습을 시작한 이후 반복돼 온 패턴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사진=AFP/연합)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입장 차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6월 전쟁 종식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란은 해당 문서가 선박 통항에 대한 자국의 권한을 인정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백악관 내부에서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인정하는 방식의 합의에 강한 반대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대이란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 개발을 압박할 수단도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정 국가가 국제 해상 교통로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중국이 대만 해협 등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이란이 통행료를 부과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란은 미국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에너지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해 미국과 동맹국의 부담을 키운 뒤 결국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연구소의 마이클 나이츠 연구원은 “이란의 가장 큰 강점은 중동 국가들과 세계 경제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국이 단기간 내 협상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대니 시트리노비츠 선임연구원은 “외교적 합의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 반대로 군사적 확전은 국제유가를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뿐 아니라 이란이 물러설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이란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트럼프 1기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을 지낸 프레드 플라이츠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다가오는 중간선거를 이유로 미국에 불리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적절한 출구 전략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이미 감안하고 있다”며 “이부분은 이미 반영돼 있으며 (선거 결과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날 백악관에서 3선을 노리지 않기 때문에 이란과의 합의 도출에 있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11월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이란과 성급하게 종전을 도모한다는 미국 내 지적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