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배상하라” 트럼프 맞불…글로벌 석유시장 ‘디젤 쇼크’ 오나 [이슈+]

“이란 배상하라” 트럼프 맞불…글로벌 석유시장 ‘디젤 쇼크’ 오나 [이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신경전이 격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석유시장에서는 디젤(경유)을 중심으로 공급난이 닥칠 것이란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이미 디젤 가격 상승폭이 국제유가를 크게 앞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 이슬람공화국 대표들이 지난 5개월간의 군사 충돌로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지금까지 우리의 어떠한 협상이나 회담에서 언급된 적이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하지만 흥미로운 생각이다. 나 역시 이란이 도로변 폭탄과 수많은 분쟁을 통해 죽이거나 중상을 입힌 모든 사람에 대한 배상을 이란에 요구하겠다”며 “여기에 지난 50년 동안 이란이 살해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시위대 유가족들에게도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5개월 동안 사망한 5만2000명은 말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협상) 대표들에게 향후 모든 협상에서 이 문제를 확고하게 제기하도록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별도의 게시글을 통해 “이란과의 협상에 있서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예멘,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입힌 피해와 사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적었다.

◇ 美·이란 ‘배상 맞불’…호르무즈 재개 더 멀어지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해 최근 이란이 제시한 6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이란은 해상 봉쇄와 제재 해제, 이란 주변 지역에서의 미군 철수와 함께 ‘두 차례의 침략 전쟁’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 6월 발효된 양해각서(MOU)보다 한층 강경해진 조건인 만큼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역(逆)배상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적대적 행위가 계속되는 한 이 수로(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은 마련되지 않는다”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은 미국이 불법적인 행동을 중단하고 봉쇄를 해제하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 양측의 입장이 갈수록 강경해지면서 전쟁 종식의 계기가 될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합의가 단기간 내 이뤄질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사진=AFP/연합)

◇ 전쟁에 막힌 디젤 공급…겨울 앞두고 ‘수급 비상’

문제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동안 글로벌 석유시장의 공급난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글로벌 디젤 공급이 이미 빠듯해진 가운데 북반구 겨울철을 앞두고 수요까지 증가하면서 향후 디젤 물량 확보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통상 구매자들은 기온이 떨어지기 전 디젤 재고를 미리 확보한다. 디젤은 운송과 산업은 물론 난방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핵심 연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동 전쟁으로 대규모 정유시설이 가동 차질을 빚은 데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여파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디젤 시장은 빠르게 경색됐다. 러시아는 지난달 초 경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동 지역과 러시아는 지난해 전 세계 디젤 수출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특히 자체 정제 능력이 부족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이 디젤 공급 부족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디젤 재고는 약 149만톤으로 5년 평균인 189만톤을 크게 밑돌고 있다.

공급 우려가 커지면서 디젤 가격 상승세는 국제유가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ICE선물거래소 유럽 디젤 가격은 이날 톤당 1312.2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월 18일 기록한 저점인 850달러와 비교하면 약 54% 급등한 수준이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이 기싸움을 이어가자 이날 하루에만 10% 넘게 뛰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디젤 가격 역시 이날 7.4% 급등해 지난달 13일 이후 가장 큰 일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반면 글로벌 원유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이날 전장 대비 5% 오른 배럴당 87.72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7월 저점과 비교하면 상승률은 약 25%다.

▲지난 1년간 유럽 디젤 가격 추이(사진=ICE선물거래소)

◇ 미국도 재고 30년래 최저…아시아도 여유 없다

그동안 유럽은 미국산 디젤을 수입해 부족한 물량을 충당해왔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재고가 줄어드는 가운데 겨울철 수요 증가까지 예상되는 만큼 대(對)유럽 수출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디젤과 난방유 등을 포함한 중간유분 재고는 지난 7월 31일 기준 1억720만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시기 기준으로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자재 데이터 분석업체 케이플러의 자미르 유소프 청정석유제품 분석 총괄은 “미국 걸프 연안 정유업체들이 북서유럽에 디젤을 무기한 계속 수출할 수는 없다”며 “그들에게도 해결해야 할 자체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1분기가 가까워지면 미국 정유업체들이 통상 겨울철 난방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미국 동부 지역으로 물량을 돌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역시 유럽의 디젤 공급난을 완화해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전쟁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일부 아시아 발전업체들이 대체 연료로 디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분석업체 스파르타 커머디티스의 준 고 선임 석유시장 애널리스트는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우선 역내 수요를 충족해야 하는 데다 일본 등에서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등유 생산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유업체들이 등유 생산을 늘릴 경우 그만큼 수출할 수 있는 디젤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진=EPA/연합)

◇ 디젤 공급난, 인플레로 이어지나…중국 등 주목

디젤 공급난이 본격화할 경우 충격이 에너지 시장에만 그치지 않고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컨설팅업체 FGE 넥산트ECA의 유진 린델 정제제품 총괄은 “유럽은 엄청난 디젤 문제를 안고 있다”며 “가격이 극도로 높은 수준까지 치솟는다는 의미에서 상황이 험악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디젤 가격 급등이 운송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각국 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까지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디젤은 운송과 건설, 산업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햘을 하는 만큼 국제유가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디젤 가격 상승만으로 물가 상승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다만 겨울철 재고 확보 시즌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데다 올겨울 기온이 얼마나 떨어지느냐에 따라 실제 수급 상황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여기에 세계 최대 정유국인 중국이 향후 얼마나 많은 정제유를 수출할지도 글로벌 수급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중국은 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에너지 안보 강화를 내세워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정제유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달부터 정제유 수출을 재개했으며 이달에도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