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시장 점포에 진열돼 있는 플라스틱 제품. 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석유화학 제품의 수입 물량을 직접 제한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카드를 꺼내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발(發) 저가 물량 공세로 역내 수급 불균형이 심화한 데 따른 조치다. EU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와 중국산 제품의 아시아권 밀어내기 수출 확대로 국내 업계의 업황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외신과 업계 등에 따르면, EU는 최근 중국산 저가 물량의 유입 확대로 역내 수급 불균형 우려가 커지며 일부 석화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등 EU 3대 경제국의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향후 수주 내 광범위한 세이프가드 도입 요청서가 제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역내 중국산 제품의 유입이 확대되며 EU 토종 업계의 업황이 급속도로 악화한 영향이다.
석화의 경우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와 에폭시 수지, 유리섬유 등 제품이 세이프가드 요청 대상에 오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이프가드는 일정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 관세부과 등을 통해 수입을 억제하는 조치다.
EU의 경우, 회원국 요청을 통해 세이프가드 도입이 안건에 오르게 되면 회원국 표결로 도입 여부를 확정한다. EU 회원국 가운데 15개 이상 국가가 도입을 찬성하고, 찬성 국가가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대표하는 ‘가중다수결’ 요건을 충족하면 도입 안건이 가결되는 방식이다.
세이프가드 조치를 도입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면, 해당 조치는 EU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교역상대국에도 적용된다. 당초 도입 원인이 중국의 저가 공세였을지라도 수입제한 조치의 영향이 한국 등 다른 국가까지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PET와 에폭시 수지는 한국이 매년 수조원대 수출 실적을 기록하는 주요 석화 제품군이다.
▲한국의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에폭시 수지 수출실적. 그래픽=박주성 기자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국산 PET 수출실적은 지난 2024년과 지난해 각각 10억3693만달러(1조4000억원)·8억9185만달러(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1~7월) 역시 5억3963만달러(7300억원)를 기록해 연간 수출액 1조원 달성을 앞둔 상태다.
에폭시 수지 수출액 규모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24년과 지난해 각각 수출액 8억1605만달러(1조1000억원)·8억5863만달러(1조1500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올해 5억7528만달러(7700억원) 수출실적을 보이고 있다.
국산 제품의 EU향(向) 수출 비중도 적지 않다. 올해 국산 PET와 에폭시 수지의 유럽 수출실적은 각각 9294만달러(1200억원)· 1억4659만달러(2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이는 올해 전세계 수출액 가운데 17.2%(PET)·25.5%(에폭시 수지) 비중을 차지하는 규모로, EU 세이프가드의 직접 영향권에 들 수 있다.
▲한국의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에폭시 수지 유럽향(向) 수출 비중. 그래픽=박주성 기자
EU의 세이프가드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업계의 실제 영향은 이 같은 규모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EU 등 주요 시장의 보호무역 강화로 공급이 제한된 중국산 저가 물량이 아시아 등 제3국에 떠밀리는 이른바 ‘밀어내기 수출’ 현상이 심화하며 국내 업계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PET 기준 EU를 제외한 한국의 수출규모 상위 5개국 중에선 △베트남(1억2239만달러, 22.7%) △중국(8992만달러, 16.7%) △일본(5228만달러, 9.7%) △인도네시아(1049만달러, 1.9%) 등 아시아 국가가 대거 포함돼있다.
에폭시 수지 역시 △중국(8981만달러, 15.6%) △일본(2765만달러, 4.8%) △인도(2471만달러, 4.3%) △베트남(2224만달러, 3.9%) 등 아시아권 수출 비중이 적지 않다.
업계는 EU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검토 단계에 있는 만큼, 우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대응 방안을 강구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한 석화기업 관계자는 “진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적극 나설 것”이라며 “실제 세이프가드가 시행될 경우 생산을 탄력 조정하거나 기존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협단체 역시 국내 산업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전략을 적극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세이프가드 특성상 한국을 포함한 여타 교역국의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국내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협회는 향후 EU의 관련 동향과 조사 진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국내 기업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전략 마련을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