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은 총재 "경기 매우 엄중…부양정책 시급, 새 정부 리더십 발휘해야"

이창용 한은 총재 "경기 매우 엄중…부양정책 시급, 새 정부 리더십 발휘해야"

【서울 = 서울뉴스통신】 이민희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현 경제 상황을 "매우 엄중하다"고 진단하며 경기 부양정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12일 한국은행 창립 75주년 기념사를 통해 "작년 10월 이후 네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경기 활력을 제고해왔고, 당분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화·재정정책 간 긴밀한 공조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은은 지난 5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 총재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를 제외하고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3개월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0.7%포인트나 낮춘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현재의 저성장 국면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 총재는 그러나 경기 부양이 장기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 회복을 위한 부양책이 시급하지만,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며 "경기변동에 강한 경제구조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리 인하의 부작용으로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과 내외금리차 확대에 따른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우려했다. 연준의 금리인하 속도에 따라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요인으로 제시했다.

새로 출범한 정부에 대해서는 구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정치적 리더십을 통한 이해관계 조정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그는 "구조개혁은 충분한 조율과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좋은 정책도 저항에 부딪혀 좌초된다"며 "새 정부가 갈등 조정 리더십을 발휘해 당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유럽 사례를 인용하며 "성장 정체가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국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정치적 리더십 부재가 유럽의 개혁 정체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AI 확산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프로젝트 한강'과 '프로젝트 아고라'를 통해 미래 디지털 금융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이라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개발과 소버린AI 도입 등도 언급했다. 핀테크 혁신을 적극 지원하되 법정통화 질서를 훼손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 총재는 "개선하려면 변해야 하고, 완벽해지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한은의 변화와 혁신 의지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