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학적 원인 규명 못했지만…法 “반도체 근로자 사망, 업무 인과관계 인정”

의학적 원인 규명 못했지만…法 “반도체 근로자 사망, 업무 인과관계 인정”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의학적으로 명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반도체 공장 근로자의 사망에 대해 법원이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법원은 다양한 유해요소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작업 환경이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지난 4월 18일,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반도체 제조 공정 중 웨이퍼 연마·세정 등의 업무에 종사했고, 2017년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진단을 받은 뒤 2018년 사망했다. 유족은 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작업환경 노출 수준이 기준치 이하고, 병과 유해물질 간 의학적 인과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결과를 인용해 불산, 황산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거나 노출 기준 미만이라며, 디클로로메탄이나 극저주파전자기장과의 직접적인 연관성도 과학적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병이 발병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유해인자가 단독이 아닌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기존 노출 기준은 유해물질이 단독으로 존재할 때를 기준으로 정한 것으로, 실제 현장처럼 여러 유해요소에 동시에 노출되거나 교대근무와 같은 인자가 결합될 경우 상호 상승작용으로 질병 발생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역학조사에서 직접적 의학적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더라도,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유해 환경에 노출된 경우 업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재해 판단의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