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불패 호주도 꺾였는데”…한국 집값은 다를까 [이슈+]

“부동산 불패 호주도 꺾였는데”…한국 집값은 다를까 [이슈+]

▲호주 시드니의 한 주택가(사진=로이터/연합)

집값이 장기적으로 오르며 부동산 투자 불패 신화가 강했던 호주의 주택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정부의 부동산 투자 규제가 맞물리면서 시드니를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떨어지고 거래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가계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한국 역시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0년간 호주 시드니에서 주택을 사는 것은 가장 확실한 투자로 여겨져 왔다”면서도 “이제 이같은 부동산 호황이 위협받고 있으며, 그 충격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코탈리티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시드니 주택 가격은 지난 2월 고점 대비 약 7% 하락했다. 고가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시작된 하락세는 전국으로 확산해 호주 주요 도시 외각 지역의 93%에서 집값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전국 주택가격 지수 역시 지난달 0.9% 떨어지면서 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 3월 고점과 비교하면 3.6% 낮아졌다. 시드니 집값은 지난 한 달 동안에만 1.4% 하락했다.

거래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코탈리티의 분기 추정치에 따르면 호주 주택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5.5% 감소했고 최근 5년 평균과 비교해서도 11.5% 낮은 수준이다. 특히 시드니, 브리즈번 퍼스 등에서는 거래량이 전년 대비 20% 넘게 감소했다.

주택이 팔리는 데 걸리는 기간도 길어지면서 시장에 매물이 쌓이고 있다. 코탈리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4주 동안 호주 주요 도시에서의 매물은 1년 전보다 24% 증가했고 최근 5년 평균보다도 8% 많았다.

코탈리티의 팀 로레스 리서치 디렉터는 “시드니가 계속해서 주택시장 하락세를 주도하고 있다”며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데다 평균보다 많은 매물이 시장에 나온 상황이 호주 최대 주택시장에 더 큰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세제 뜯어고친 호주…고금리까지 ‘이중 충격’

▲미셸 불록 호주중앙은행(RBA) 총재(사진=로이터/연합)

호주 주택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한 배경으로는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세제 개편이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투자용 부동산에서 발생한 손실을 개인소득에서 공제해주는 ‘네거티브 기어링’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해당 제도는 내년 7월 시행되며 신규 건설 주택에 한해서만 네거티브 기어링이 적용된다.

내년 7월부터 양도소득세 50% 감면 혜택도 폐지되고 취득원가를 물가에 연동하는 방식과 최저 30% 세율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 같은 세제 개편을 앞두고 부동산 투자자들의 셈법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기준금리 상승도 주택시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호주중앙은행(RBA)은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4.35%까지 끌어올렸다. 2022년 초까지만 해도 금리는 0.1%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7월 호주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3.5% 상승해 시장 전망치인 3.3%를 웃돌자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도이체방크 등은 RBA가 이르면 이달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경우 주택 구매자들이 통상 30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지만 RBA에 따르면 호주는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5%에도 못 미친다. 기준금리 인상이 상당수 주택담보대출 차주의 월 상환 부담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구조다.

◇ 은행 대출 20% 급감…대형 개발업체까지 지급불능

호주 부동산 시장 둔화는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월 이후 호주 주요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신청은 최대 20% 감소했다. 한 대형 은행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시장 상황을 두고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수십 년 전보다 훨씬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동산 개발업계에서는 이미 대형 부실 사례도 나타났다.

호주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배슬라그룹은 33억호주달러(약 3조2400억원)의 부채를 안은 채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 회사가 사모대출펀드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왔던 만큼 시장에서는 과도한 부채를 떠안은 다른 개발업체들까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가계 소비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메르츠방크에 따르면 호주 가계자산의 약 60%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 집값 하락이 단순한 자산가치 감소에 그치지 않고 소비심리와 내수경기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호주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6월 80.6포인트로 ‘극도로 비관적’인 수준까지 떨어졌다.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 도메인의 니콜라 파월 수석 주거부동산 이코노미스트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정 상황이나 경제 전반에 확신이 없을 때 부동산처럼 가격이 큰 자산을 거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중국·뉴질랜드·캐나다도 침체…집값 잡다 경기까지 흔들

호주 부동산 시장의 위축은 다른 주요국이 먼저 겪은 부동산 침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블룸버그는 “최근 사례를 보면 과열된 주택시장을 진정시키려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침체를 겪지 않은 국가는 거의 없다”고 짚었다.

실제로 중국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부동산 위기가 5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주택시장 호황을 누렸던 뉴질랜드 역시 장기적인 부동산 침체에 빠져 경제성장까지 압박받고 있다. 캐나다도 주택 가격이 약 20% 급락했지만 높은 집값 때문에 시장에서 밀려난 상당수 무주택자들에게는 여전히 가격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주 역시 정책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집값이 하락하고 있지만 높은 금리로 주택담보대출 비용이 늘어나면서 실수요자의 부담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정책당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차입 비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경제를 흔들지 않으면서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고 주택 구입 부담을 낮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 부동산 자산 65% 한국…“호주보다 더 높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곳곳에 자리 잡은 아파트 전경.

호주의 사례는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한국 전체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5%로 미국(32%), 일본(36%)은 물론 호주(60%)보다 높다.

특히 한국은 다른 주요국과 비교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이용 비중이 높아 기준금리 상승이 가계의 이자 부담으로 빠르게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영준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국장도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는 여타 국가에 비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당국의 정책 유도 등에 힘입어 잔액 기준 2010년 말 0.5%에서 2016년 말 43.0%, 2023년 말에는 51.8%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주요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고정금리 비중은 2022년 4분기 34.9% 수준으로, 멕시코(99.6%)·미국(95.3%)·프랑스(93.2%) 등을 밑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도 긴축 사이클에 들어갔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7일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한은이 오는 11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린 뒤 내년 2월 추가 인상에 나서 최종금리를 3.5%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부채도 사상 최대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포괄적인 가계부채를 나타내는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 2분기 말 2019조8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5조9000억원 증가하며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가계대출은 1891조3000억원에 달했다.

집값 상승기에 불어난 대출을 떠안은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추가로 오를 경우 주택담보대출 차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