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EPA/연합)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한 데 이어 공화당의 전통적인 텃밭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상원에서도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다. 미국 경제에 대한 불만과 이란 전쟁에 대한 반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을 향한 심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출범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미국 경제와 이란 전쟁을 둘러싼 광범위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 주요 외신도 민주당의 의회 권력 탈환을 보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그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됐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임기 2년인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연방 상원 의석 100석 가운데 35석, 36개 주의 주지사 등을 선출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시간 4일 오후 3시 35분 기준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걸린 상원 의석 35석 가운데 20석을 확보했다. 아직 승패가 확정되지 않은 3개 주 중 2곳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앞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민주당 진영은 선거를 치르지 않는 기존 의석까지 합쳐 상원 전체 100석 중 56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원에서도 민주당은 전체 435석 가운데 과반인 225석을 확보해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다.
민주당의 하원 탈환은 선거 전부터 대체로 예상됐던 결과인 만큼 이번 선거에서 더욱 주목받는 것은 상원 선거 결과다.
민주당은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인 캔자스, 텍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아이오와 등 6개 주에서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던 상원 의석을 빼앗았다. 이번 선거에서 핵심 경합주로 꼽히던 메인주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하려면 기존보다 의석을 4석 순증해야 했는데, 예상 밖의 승리를 거듭하며 과반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텍사스와 캔자스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대이변이 잇따랐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텍사스에서 민주당 후보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승리한 것은 1988년이 마지막이었다. 캔자스에서는 민주당 상원의원이 마지막으로 당선된 시점이 무려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공화당의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지역들마저 민주당에 넘어가면서 선거 판세는 예상보다 빠르게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
▲한국시간 4일 오후 3시 35분 기준 중간선거 상원 판세. 민주당이 상원에서 4석 이상 순증에 성공해야 다수당을 탈환할 수 있는데 7석 순증에 성공한 것이다.(사진=블룸버그)
◇ ‘샤이 트럼프’보다 강했던 반(反) 트럼프 표심
2016년과 2020년, 2024년 미국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면서 이른바 ‘샤이 트럼프’가 선거 예측의 주요 변수로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 차례 대선 모두에서 주요 여론조사 예상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과거 대선에서 나타났던 트럼프 지지세의 과소평가 현상보다 집권 2기 행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지난 2월 시작된 이란 전쟁으로 미국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됐고, 이는 집권 공화당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이번 참사는 거의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라며 “유권자들은 생활비 부담에 분노하고 있으며, 물가 상승을 부추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적 결정에도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생활비 부담에 대한 불안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문제 대응 방식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러한 흐름은 선거 당일 실시된 출구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위해 투표했다는 응답자는 43%에 달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투표했다는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나머지 41%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9%는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경제’를 꼽았으며, ‘민주주의 현황’을 선택한 응답자는 32%였다. 또 투표 결정에 ‘정부 부정부패’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자는 54%, ‘생활비’를 결정적 요인으로 꼽은 응답자는 49%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도 38%에 그쳤다. 이는 2008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27%를 기록한 이후 대선 및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현직 대통령 지지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주요 경합지역에서 선거운동에 관여한 공화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내가 살아온 동안 겪은 최악의 패배이며, 아마 역사상 최악의 선거 패배일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과 국정 운영 성적표가 투표용지에 올라 있다고 말했고, 유권자들은 이에 압도적으로 응답했다”고 지적했다.
▲(사진=AFP/연합)
◇ 트럼프 “내가 출마했다면 압승”…민주당 의회 장악에 국정 운영 제동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하고 민주당과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할 의향이 있다”며 “우리는 민주당과 협력할 것이며, 협력을 고대하고 있다. 아마도 어떤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시각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나는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내가 출마했다면 우리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보다 공화당과 개별 후보들에게 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중간선거에서 선출된 연방 상·하원 의원들은 내년 1월 3일 출범하는 제120대 의회를 구성하게 된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게 된다. 특히 상원까지 민주당에 넘어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인사와 정책에도 상당한 제약이 가해질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권력 구도 변화가 새로운 법안의 통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는 데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의회 장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의회 다수당 지위를 바탕으로 강력한 조사 권한을 확보하게 되며, 이를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물론 그의 가족과 사업상 이해관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관련자들에게 자료 제출이나 증언을 강제할 수 있는 소환장 발부 권한도 포함된다. 민주당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