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시중은행이 일제히 은행장 교체 시즌을 맞이함에 따라 경영 승계 및 차기 행장 선임 절차를 개시한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최근 차기 행장 선임 절차를 속속 시작하고 있다. 실적 성과와 내부통제 등이 차기 행장의 주요 평가 항목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올해는 지배구조상 적합성이나 정책 방향성과 같은 판단이 보다 강하게 작용할 여지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연말 4대 시중은행이 일제히 은행장 교체 시즌을 맞이함에 따라 경영 승계 및 차기 행장 선임 절차를 공식적으로 개시했거나 직전 단계에 돌입했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인 ‘CEO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 승계 절차 개시’에 따라 예년 대비 일정이 앞당겨져 이달 중순을 전후해 잠재 후보군(롱리스트) 확정을 두고 조율 중인 상태다.
◇ ‘롱리스트’ 조율 들어간 은행권…현 행장 연임 이목
하나은행은 최근 경영 승계 절차를 공식 개시했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의 임기가 12월 만료됨에 따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가동된 상태다.
국민·신한은행도 이환주 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내부 롱리스트 검토 등 자추위의 본격적인 운영 가동이 임박한 상태다. 우리은행은 자추위 공식 개최를 위한 사전 내부 절차 진행 중으로 연말 정진완 우리은행장의 임기 만료 시점에 맞춰 늦어도 이달 말 안에 자추위를 공식 출범하고 승계 절차를 시작하도록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권에선 임기 만료를 앞둔 행장들의 연임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환주 행장은 가계대출 규제 국면에서 올해 기업대출 잔액으로 6월 말 기준 200조원을 돌파해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해 내실경영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기업대출 연체율은 전년 동기보다 0.06%p 낮아진 0.26%를 기록하고 고정이하여신(NPL) 비율도 낮춰 성장과 건전성을 함께 이뤄냈다.
다만 11일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차기 회장 후보로 이재근 글로벌·WM·SME부문장을 최종 낙점하면서 지배구조 세대교체 흐름이 형성되자 거취가 불분명해졌다는 시각이 커진 상태다. 1964년생인 이환주 행장의 연배 역시 이사회의 쇄신 카드와 맞물릴 수 있다는 예상이다.
▲(왼쪽부터)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상혁 행장은 취임 후 사상 최대 순이익 경신과 상반기 6년 만의 리딩뱅크 탈환, 비이자이익의 급증 등 탁월한 경영 성과를 기록했다.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선제적으로 제출하면서 내부통제 관련 성과도 올렸다. 다만 최근 연체율 변동성이 커지는 등 건전성 관리 지표와 이미 한 차례 연임을 해 4년간 행장직을 수행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이호성 행장은 강한 성장세로 인해 ‘연속 역대 최대실적 경신’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지난해 3조7475억원의 역대 최대 연간 순이익 달성에 이어 올 상반기도 2조1211억원의 반기기준 최대 실적을 나타냈다. 은행권 내 유일하게 상반기 이자이익을 10% 이상(14.5%) 증가시키는 등 이자 체력을 끌어올린 한편 비이자이익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하나은행의 ‘2년 단임’ 인사 관행, 2분기 순익의 감소로 인한 건전성 방어 능력 등 각종 변수가 복병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정진완 행장은 공격적인 기업 영업을 전개한 결과 대기업 대출 성장세 1위를 기록하는 등 ‘기업금융 명가’를 재건해 낸 점이 성과로 꼽힌다. 전임 행장 시절 금융사고 여파의 수습과 실질적 예방 시스템 구축 등 철저한 내부통제 및 체질 개선에도 나섰다. 다만 지난해 연간 순익과 올 상반기 모두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연임 심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0년 이후 행장이 2년 이상 장기 재임하지 못하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 예년과 달라진 ‘평가표’…’실적이 곧 연임’ 논리 깨질지도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올해 은행장 인선은 예년보다 정무적·지배구조적 판단의 비중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올 들어 강력한 지배구조 개혁 시그널을 시사하고 있어 은행장 교체를 포함한 금융권 인사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당초 전적으로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쏠렸던 시장의 관심이 금융사 CEO로 옮겨간 상태다. 개선안 방향성이 ‘지주 회장이 계열사 CEO를 결정하는 구조’를 지적함에 따라 은행장 선임 절차도 개선안의 영향권에 들어갈 전망이다. 회장보다 이사회와 임추위 중심의 승계구조가 짙어지면 인선 기준이 보다 까다로워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런 흐름에서 실제 지주 회장 선임에 이변이 일어났다는 평가다. 지난 11일 KB금융지주에서 양종희 현 회장의 연임이 무산된 것도 당국의 ‘지배구조 선진화 및 세대교체 요구’를 이사회가 배제하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KB금융의 사례로 인해 연말 자추위 인사 기준 또한 실적 중심에서 지배구조 쇄신이나 인적 세대교체 등에 무게감을 둘 수 있다. 일각에선 차기 회장 후보보다 연배가 높거나 장기 재임 중인 행장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는 1차 평가 기준인 실적의 무게감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며 “실적이 좋으면 된다는 당연한 연임 논리보다 금융사고·내부통제 사고 여부부터 지배구조상 승계 적합성, 인적 쇄신 흐름 등 정책방향 부합성과 같은 정무적 판단이 보다 강하게 작용해질 여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네 곳 은행 모두 내달 중순까지는 면접 대상자인 숏리스트(최종 후보군)를 압축해 심층 면담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단독 후보 낙점 및 발표는 이르면 11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