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가 수익성 둔화와 규제 완화를 계기로 국공채 중심 운용에서 벗어나 AI·인프라 등 생산적 금융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보험업계가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자금 운용 전략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공채 중심의 안정적 자산 운용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재생에너지·인프라·벤처투자 등 장기 성장 산업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는 흐름이다. 보험 본업의 수익성이 경쟁 심화와 손해율 상승 등으로 둔화하는 가운데 투자이익의 중요성이 커진 데다, 최근 자본규제 완화로 운용 여력까지 확대되면서 보험사들의 움직임도 한층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생산적 금융 확대가 곧바로 보험사의 투자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고위험 자산 비중이 높아질 경우 자산 건전성과 지급여력(K-ICS·킥스)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벤처투자 등은 회수 기간이 길고 사업 변동성이 큰 만큼 투자 손실 발생 시 자본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생산적 금융 확대와 보험사의 안정성 유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작업이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향후 5년간 4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생산적 금융에 투입한다. 이는 기존 로드맵 보다 3조2000억원 가량 증가한 것으로, 8조원은 국민성장펀드에 투자된다. 해당 펀드가 만드는 하위 펀드에 유동성 공급자로서 참여,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KDB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채권을 인수하거나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사업에 대해 대출 또는 지분 투자를 단행하는 역할도 수행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 전환(AX) 등에 힘입어 2024년 국내에서만 6조원을 돌파했다. 향후에도 상업용을 중심으로 두 자릿수 성장이 예상된다. 또한 장기 임차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가 꾸준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평가다. 항공우주·바이오·재생에너지·소형모듈원자로(SMR)를 비롯해 국가 전략산업으로 꼽히는 분야도 투자 대상이다.
◇ 제도 변화로 더해지는 ‘실탄’ 24.2조
▲보험사 자본규제 완화 내용. (자료=금융위원회)
지난 4월 정부가 내놓은 보험사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은 드라이브적인 성격이 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위험계수를 높이고 주식·신용위험계수는 낮춰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자금을 투자로 돌리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정책프로그램 위험계수를 49%에서 20% 이하로 낮추고, 10년 이상 장기보유특혜 적용 대상에 비상장주식과 펀드도 포함시켰다. 블라인드펀드 미집행 약정 위험액 산출도 합리화한다. 이를 통해 보험사가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은 24조2000억원 가까이 많아진다.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의 ‘분자’에 해당하는 요구자본이 줄어들면서 투자 부담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100억원 투자시 49억원이 요구자본으로 책정되는 기존 방식 대신 20억원만 반영되면 추가 투자를 단행해도 킥스 비율을 유사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
채권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전망이다. 장기 국채 수요가 기업·인프라 장기성 대출 또는 정책펀드로 유입되는 형태다.
김상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 효과가 나타나면 채권 보다 주식·대출채권 중심으로 자산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생산적 금융이 ‘여명기’ 단계인 까닭에 지난 1년간 생·손보사 채권잔고 감소에는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지만, 중장기 채권 수요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출채권의 경우 인프라 대출이 성장의 한 축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고채를 비롯한 시장금리가 상승한 데 이어 기준금리 인상이 점쳐지는 국면인 것도 자금 이동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채권 비중을 낮추고, 다른 자산을 활용해 수익을 올릴 필요성이 커졌다는 논리다. 국채는 금리 변동성을 줄이는 등의 효과가 있지만, 저수익 자산으로 분류되는 문제가 있다. 국채 의존도가 높을수록 투자수익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김 연구원은 지난달말 기준 보험사 채권 듀레이션이 11.4년으로 축소된 원인으로 채권 평가손실 확대에 직면한 기업들이 초장기 국채를 덜어낸 것을 지목했다. 자산 듀레이션이 부채 듀레이션 보다 길어지면서 초장기 국채 수요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금리 상승이 자산가치 하락을 야기, 킥스 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 건전성 우려 여전…규제완화로 부족
그러나 보험사들이 쉽사리 공격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이 맞선다. 우선 내년부터 시행되는 기본자본 킥스비율이 발목을 잡는다. 이는 보험사 자본의 질 향상이 목적으로, 기존 킥스와 달리 보완자본으로 높일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보험사들이 전체 운용자산 1292조원 중 42.6%를 채권으로 구성한 이유도 자본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으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등에 투자했다가 회수에 차질이 생기면 적기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다.
다수의 해상풍력 단지가 투자 철회·사업 지연 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서 손을 떼는 일이 벌어진 것도 고려사항이다. 경제성이 부족한 곳에 금융사의 자금이 투입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본자본 킥스비율이 금융당국의 권고치 50%를 밑도는 보험사가 다수인 것도 문제다. 업계에서는 자본 여력이 큰 대형사 위주로 진행되는 사업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적 금융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보험업계 양극화라는 ‘부메랑’을 맞게되는 셈이다.
스타트업을 포함한 국내 벤처기업의 생존율도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창업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미 3분의 1 이상이 문을 닫고, 5년 후에는 60% 이상이 사라지는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면 장기투자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폐업 혹은 인프라 자산의 가치 하락시 손상차손을 입고, 결국 이익잉여금 감소에 따른 가용자본 하락으로 귀결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매각 작업에 돌입하면 ‘정상가’를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충분한’ 지급여력 확보를 위해 감독역량을 쏟아붓고, 자본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늘어난 세금 부담도 실적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유도하려면 종합적인 관점에서 ‘당근’과 ‘채찍’을 재점검해야할 것”고 말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