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 있다.
최근 국내 증시가 가파른 반등을 이어가며 코스피가 다시 ‘7000선’을 넘보고 있지만 시장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코스피가 단기간에 치솟자 추가 상승보다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잔고가 빠르게 불어나면서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직전 집계일인 지난 11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의 공매도 순보유 잔고액은 19조6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16조7340억원과 비교하면 약 2조2720억원, 14% 증가했다.
코스닥시장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같은 날 기준 코스닥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7조2990억원으로 지난달 말 5조5430억원보다 1조7560억원, 32% 급증했다.
두 시장을 합치면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지난달 말 약 22조2770억원에서 26조원 수준으로, 불과 7 거래일 만에 4조원 넘게 증가한 셈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먼저 매도한 뒤 주가가 하락하면 낮은 가격에 다시 사들여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공매도 잔고 증가는 해당 종목이나 시장의 향후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자들의 포지션이 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종목별로 보면 지난 11일 기준 공매도 순보유 잔고액이 가장 많은 종목은 LG에너지솔루션으로 1조3610억원에 달했다. 한미반도체가 1조2550억원, HD현대중공업이 1조1460억원으로 뒤를 이었으며 에코프로와 한국항공우주도 각각 8670억원, 8340억원을 기록했다.
공매도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대차거래 잔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대차거래 잔고는 170조2370억원으로 지난달 말 155조8630억원보다 14조원 넘게 늘었다.
대차거래는 투자자가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다른 투자자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거래다.
▲올해 코스피 추이(사진=구글 파이낸스)
◇ 5일 연속 상승한 코스피…하락 베팅도 늘었다
공매도 잔고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국내 증시가 지난달 폭락장에서 벗어나 급격하게 반등하고 있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6%, 20% 상승했다. 특히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두 지수는 5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이 기간 코스피는 약 12%, 코스닥은 8% 뛰었다. 지난 14일 코스피는 장중 7010.86까지 올라 15거래일 만에 7000선을 되찾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기록한 저점 5593.56과 비교하면 코스피는 25% 가까이 반등했다. 통상 저점에서 20% 이상 상승하면 기술적 강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한다.
최근 코스피 상승은 국내 반도체 ‘투톱’이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5거래일 동안 모두 15% 넘게 치솟았다. 지난달 저점과 비교하면 삼성전자는 32.6%, SK하이닉스는 24.4% 급등했다.
지난달 낙폭이 지나치게 컸다는 인식에 저가 매수세가 유입된 데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막대한 인공지능(AI) 투자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기업의 실적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되살아난 영향이다.
최근 미국 경제지표가 잇따라 발표된 이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 인상 우려가 다소 완화된 점도 투자심리를 끌어올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9월 금리 동결 가능성을 66.9%의 확률로 반영하고 있다. 이는 1주일 전 55.6%, 한 달 전 51.5%보다 높아진 수준이다.
▲트레이더(사진=로이터/연합)
◇ AI가 끌어올린 실질금리…증시 새 복병 되나
그럼에도 공매도가 빠르게 늘어나는 배경에는 증시를 둘러싼 주요 위험 요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경계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황의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우려가 여전한 데다 중동 정세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변수다.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할 경우 인플레이션 우려가 되살아나면서 연준의 긴축 우려가 다시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코스피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수 반도체 대형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 역시 부담이다. AI 하드웨어 투자에 대한 기대가 흔들릴 경우 반도체주뿐 아니라 코스피 전체의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글로벌 실질금리의 상승세가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30년 만기 미 물가연동국채(TIPS)를 기준으로 한 실질금리는 최근 약 3%까지 올라 1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 영국과 독일의 10년물 실질금리 역시 1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AI 투자를 확대하는 하이퍼스케일러와 각국 정부가 동시에 대규모 채권 발행에 나서면서 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 영향이다. 알파벳·아마존·메타는 올해 들어 약 2200억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해 지난해 연간 발행액 1080억달러의 두 배를 이미 넘어섰다.
정부의 자금 수요도 막대하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6%인 1조9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와 영국의 재정적자 역시 GDP 대비 각각 5%, 4% 수준으로 예상된다.
로이터는 통상 실질금리 상승은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차입비용이 오르면 기업과 가계가 투자와 소비를 줄이면서 경제성장률이 둔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글로벌 증시는 이러한 우려를 크게 반영하지 않고 있지만 실질금리 상승의 충격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뉴버거의 아쇼크 바티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 미국 실질금리가 경제성장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산되는 3~4%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면서도 “현재 수준은 경제성장률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신호”라고 지적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