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전쟁 종식을 위한 이란과의 협상 가능성을 잇달아 시사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종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증시는 사상 최고치 경신을 눈앞에 둘 정도로 회복했고 국제유가 역시 상승세가 꺾이는 등 시장은 전쟁 종료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다만 미국과 이란 간 2주간 휴전이 절반을 지난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군의 ‘역(逆)봉쇄’로 선박 운항은 여전히 제한된 상태다. 협상 재개가 임박하더라도 양측의 양보 의지가 불확실해 실제 종전으로 이어질지 예단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 “종전에 매우 가까워”…트럼프, 협상 기대감 확대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체류 중인 뉴욕포스트 기자에게 “앞으로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곳에 계속 머물러라”며 “우리가 그곳(이슬라마바드)에 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그는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을 언급하며 “군 최고위 인사가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곳에 갈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무니르는 미·이란 간 1차 종전 협상 성사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난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 종전에 매우 가까워진 상태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금 당장 철수하더라도 이란이 국가를 재건하는 데 20년이 걸릴 것”이라며 대이란 군사작전의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이란은 합의를 매우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란 역시 협상 국면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미국의 역봉쇄를 시험하다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을 단기적으로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이 추가 대면 회담을 위한 실무 일정을 조율하는 가운데, 즉각적인 갈등 고조를 피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소식통들도 이란이 며칠간 해상 운송을 제한하는 방안이 협상 재개를 위한 취약한 국면에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다만 “이란의 판단은 여전히 유동적이며,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미국의 봉쇄를 무력화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기조를 급격히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 핵 프로그램 ‘최대 쟁점’…양측 양보 여전히 불확실
문제는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되더라도 양측이 양보할 의사가 있는지다. 결렬됐던 1차 협상에서 핵심 쟁점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20년간 중단하는 방안을 요구한 반면, 이란은 3~5년 수준의 제한을 제시하며 입장 차를 드러냈다. 미국은 또 비축된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에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1차 협상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던 JD 밴스 부통령은 이날 한 행사에서 “대통령이 합의를 만들고자 할 때, 그는 작은 합의(small deal)가 아닌 그랜드바겐(포괄적 합의)를 만들고 싶어 한다”며 “아직 합의가 타결되지 않은 이유는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않는 합의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탈퇴했던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단기간 내 새로운 합의 도출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여기에 이란이 요구하는 국제 제재 해제 역시 미국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도 협상의 걸림돌로 꼽힌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사진=EPA/연합)
◇ 증시는 ‘종전 반영’…유가 급락
그럼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갈등 장기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전장 대비 1.18% 상승한 6967.38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전쟁 발발 직전(2월 27일·6878.88)보다 약 1.3% 높은 수준으로, 사상 최고치(7002.28)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유가도 협상 기대감에 급락했다.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7.9% 하락한 배럴당 91.28달러, 6월물 브렌트유는 4.6% 내린 94.79달러를 기록했다.
마이클 볼 블룸버그 전략가는 “S&P500 상승은 이란과의 전쟁이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뉴욕증시의 훈풍은 14일 아시아 금융시장으로도 확산했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2.07% 오른 6091.39에 거래를 마감하면서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인 6307.27(2월 26일)과 비교하면 3.5% 가량 낮은 수준이다.
▲올해 S&P500 지수 추이(사진=구글 파이낸스)
◇ “지나친 낙관” 경고…인플레 우려 여전
그러나 일각에선 이같은 낙관론이 지나치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여전히 30% 높은 수준에 유지되고 있다. 3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이 전월 대비 0.5% 올라 시장 전망치(1.1%)를 크게 밑돌았지만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는 여전하다.
이를 반영하듯, 글로벌 벤치마크인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현재 연 4.243% 수준으로, 2월말인 3.962%보다 여전히 높다.
로이터에 따르면 투자자문사 히틀 콜러핸의 브래드 콩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문제가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는 안일한 인식이 시장에 퍼져 있다”며 “현재 시장 가격에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이미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2월 27일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에 놓여 있지만 시장 가격은 그때와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체이스 인베스트먼트 카운슬의 피터 투즈 최고경영자(CEO)는 “시장은 이번 상황을 비교적 단기간 내 극복 가능한 일시적 리스크로 보고 있고, 새로운 고물가·고에너지 가격·고금리 체제의 시작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만약 구조적 변화였다면 현재와 같은 강세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호르무즈 해협 여전히 막혀…“새로운 타코” 지적도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타코'(TACO·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 행보를 감안했을 때 이번 종전 시나리오가 시장을 달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JP모건 수석 전략가 출신인 마르코 콜라노비치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마법의 타코’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항복에 가까운 요구를 제시해 거절당하면서도 시장에는 합의가 하루나 이틀 내에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봉쇄된 상태지만 이러한 방식이 투자자들에게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마로크는 이전 글에서도 “투자자들(시장)은 이번 전쟁이 끝났고 에너지 위기도 모면됐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에너지 위기와 관련해 그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운송은 여전히 제한적인 상황이다. 중동 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엑스를 통해 봉쇄를 시작한 지 첫 24시간 동안 이란의 항구에서 출항한 선박 중 봉쇄를 뚫은 선박은 없었고 상선 6척이 오만만에 있는 이란의 항구로 재진입하라는 미군의 회항 지시를 따랐다고 발표했다. 미군은 13일부터 이란으로 가거나 이란에서 나오는 모든 선박을 대상으로 봉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헤지펀드 업계 거물인 시타델의 켄 그리핀 CEO는 이날 ‘세마포 월드 이코노미’ 콘퍼런스에서 현재 상황을 “세계 경제에 매우 위험한 순간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핵심 변수는 중동에서 에너지 흐름이 통행료나 위협 없이 정상적으로 재개되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전형적인 에너지 가격 충격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