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분주하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작은 가격 왜곡이 해외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수백억원 규모의 손실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넥스트레이드(NXT) 프리마켓에서 발생한 SK하이닉스 ‘1주’의 이상 체결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의 무기한 선물 가격에 반영되면서 800억원대 강제청산이 발생한 것이다. 전통 금융시장과 가상자산 시장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리스크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지난 28일 오전 국내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 프리마켓에서 발생했다. 개장 직후 SK하이닉스 주식 1주가 127만2000원에 거래됐다. 이는 전 거래일 대비 29.99% 낮은 가격으로, 사실상 하한가 수준이었다.
해당 거래는 곧바로 정상화됐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이후 170만원대로 회복하면서 국내 현물시장에서는 큰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비정상 가격이 해외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실제 가격 정보로 활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문제의 가격은 트레이드엑스와이지(Trade.xyz)가 제공하는 SK하이닉스 무기한선물 상품의 오라클 가격에 반영됐다. 오라클은 파생상품 거래에서 기초자산 가격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데이터 공급 체계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 관련 무기한선물 기준가격이 약 17.9% 하락했고, 해당 가격을 활용하던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에서는 약 5740만달러(약 826억원) 규모의 포지션이 연이어 청산됐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알리움(Allium)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 청산 과정에서 900명 이상의 이용자가 영향을 받았으며, 실제 손실 규모는 약 1740만달러(약 251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됐다.
신한투자증권 박성제 연구원은 거래량이 제한적인 프리·애프터마켓에서 발생한 단 한 건의 이상 체결도 자동화된 가격 산정 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으로 전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오라클이 시장 가격을 기계적으로 반영하는 구조에서는 작은 가격 오류가 대규모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올 초 이후 SK하이닉스 주가 추이.
이번 사태 이후 상품 제공자인 트레이드엑스와이지는 투자자 보상 절차에 착수했다. 회사 측은 29일 청산으로 발생한 손실을 전액 보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구체적인 보상 대상은 추후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보상은 재발 방지를 위한 상시 정책이 아닌 일회성 조치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전통 금융자산을 기반으로 한 가상자산 파생상품 시장의 위험 관리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기한 선물은 주식이나 원자재, 채권처럼 기존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을 24시간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된 파생상품이다. 높은 레버리지 활용이 가능해 투자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비가상자산 기반 상품군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하지만 기초자산 가격을 전달하는 오라클 시스템이 거래량이 적은 시장의 일시적 가격 변동까지 그대로 반영할 경우 시장 왜곡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특히 레버리지 비중이 높은 파생상품에서는 작은 가격 변화가 대규모 강제청산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넥스트레이드는 재발 방지를 위해 오는 9월 14일부터 기준가격 대비 10% 이상 가격이 변동할 경우 2분간 단일가매매로 전환하는 정적 변동성완화장치(VI)를 도입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해당 장치가 시행되면 프리마켓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가격 왜곡 가능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