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녹색교통운동,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플랜1.5가 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현진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허용 기준’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2030년 전기차 누적 보급량이 정부 자체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기준을 강화하겠다면서도 각종 예외 조항을 포함해 실제 강화 효과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지적이다.
그린피스, 녹색교통운동,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플랜1.5 등 4개 환경·에너지 시민단체는 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안을 ‘조삼모사식 개편’으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기준 강화를 요구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2030년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현행 km당 70g에서 54g으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기준 수치만 낮췄을 뿐, 배출량을 계산할 때 각종 감면 혜택을 적용해 실제 감축 효과를 갉아먹고 있다고 반발했다. 주요 선진국들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을 못 박고 제조사 특혜를 폐지하는 추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들에 따르면 친환경 기술을 적용했다는 이유로 배출량을 깎아주는 ‘에코 이노베이션’ 제도 하나만으로도 2030년 전기차 보급량은 320만 대 수준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무공해차 1대를 팔면 여러 대를 판매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슈퍼 크레딧’ 적용 대상을 늘리고, 하이브리드차 판매 실적이나 공장 간접 감축량까지 온실가스 감축분으로 폭넓게 인정해 주면서 보급 대수는 286만 대까지 더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제조사가 실제로 전기차를 많이 생산해 팔지 않아도 감면 특례만으로 규제 기준을 쉽게 채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내건 420만 대 목표 대비 약 134만 대(32%)가 부족해진다.
에코 이노베이션이란 차량의 공식 배출가스 시험에 반영되지 않는 친환경 저감 기술에 대해 그 효과를 인정해 자동차 제조사에 배출량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고효율 LED 조명, 태양광 발전 루프, 엔진 마찰 감소 시스템, 고효율 공조장치(에어컨/히터) 등 표준 시험 주행에서는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 도로 주행 시 온실가스를 줄여주는 기술들이 해당한다.
제작사가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부족분을 사후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상환 기간마저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나면서, 사실상 기업의 규제 회피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린피스, 녹색교통운동,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플랜1.5 등 4개 환경·에너지 단체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허용기준 강화를 촉구하는 요구안을 대통령실 측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이현진 기자
현재 국내 전기차 보급 추이도 비상이다. 단체들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전기차 보급 대수가 94만 대로 2030년 목표치의 22%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매년 약 65만 대의 전기차가 새로 보급돼야 하지만, 정부의 느슨한 규제가 오히려 제조사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문효동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기후정책은 전환을 미루는 기업의 규제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탈탄소에 선제 투자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며 “지금처럼 규제를 완화하면 재편되는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완성차 산업의 경쟁력마저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혜란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기준은 제작사에게 전기차를 더 많이 만들도록 책임을 지우는 사실상 공급 측의 유일한 규제인데, 정부는 온갖 예외 혜택으로 기업의 부담만 덜어주고 있다”며 “더욱이 유럽은 16년째 제작사별 이행 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반면 한국은 2021년 이후 실적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깜깜이’ 행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광일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자동차는 한 번 판매되면 15년 이상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늦어도 2035년에는 신규 내연기관차 판매가 중단돼야 한다”며 “기업의 투자와 기술 개발을 이끌어내려면 정책 신호가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 직후 △배출 허용 기준 대폭 강화 △에코 이노베이션 제도 축소 △슈퍼 크레딧 및 하이브리드 특례 철회 △미달성분 상환 기간 축소 △배출 기준의 법률 명시 및 이행 실적 투명 공개 등을 담은 요구안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이현진 기자 vrai.jin@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