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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홈플러스, 눈물의 고별전…직원·입점상인 ‘각자도생’ 길로

▲11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 2층 계산대 앞에 손님들이 구매한 물건을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대형마트가 가장 붐비는 토요일 오후. 기자가 찾은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에서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매대는 거의 텅 비어 있었지만 손님은 수 백명이 붐볐다. 홈플러스가 ‘재고 떨이’에 나선 상품을 싼 값에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매대에는 ‘무조건 3천원’ 또는 ‘50% 할인’ 표지가 붙어 있었고 손님들은 쓸만한 물건을 카트에 담느라 분주했다.

선택할 수 있는 물품은 제한적이었다. 2층 식품매장(메가푸드마켓)은 매대의 90% 이상이 비어 있었고 3층 생활용품·의류 매대도 30% 이상 비었다. 그러나 계산대는 거의 전 라인이 가동됐고, 계산대 앞에는 계산을 하려는 손님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2층에 있는 안경점도 ‘점포정리 끝장세일’ 표지를 내걸어 안경을 사려는 손님들로 붐볐고, 바로 옆 홈플러스 고객서비스센터도 환불 등을 위해 방문한 손님들로 꽉 찼다.

같은 시각 서울 영등포구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널찍한 신선식품 코너에는 3000~5000원짜리 의류 매대가 줄지어 놓였고 손님들은 옷, 슬리퍼, 침구류, 캠핑용품 등을 카트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일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받았으나 오는 20일까지 운영자금 조달계획을 마련해 즉시항고할 수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 본사 건물에 있는 강서점은 물론 서울시내 점포 직원과 입점점주들은 이미 파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강서점의 한 판매직원은 “(홈플러스 강서점은) 다음주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는다”고 말했고, 영등포점의 한 입점점포 점주도 “(홈플러스 영등포점은) 오는 15일까지만 운영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이미 대형마트로서의 생명을 다한 상태다. 청소·시설관리 등 외주업체는 회생절차 폐지 결정 후 계약이 해지돼 판매직원들이 청소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본사도 홍보실 등 주요 인력이 공백 상태다.

홈플러스 점포 수는 기업회생 신청 직전월인 지난해 2월 서울 15개, 전국 108개에서 7월 현재 서울 11개, 전국 64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본사 직원은 약 2만명에서 1만2000여명으로 줄었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대형마트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워진 상태다.

홈플러스 본사 직원들의 6월분 급여는 체불돼 있고 7월 1일부터는 퇴사자의 퇴직금 지급도 1개월 유예됐다. 다만 홈플러스 노조는 여전히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는 오는 15일 서울 광화문 MBK 본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청와대까지 가두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사실상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대주주인 MBK나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모두 홈플러스를 회생시키려는 의지는 없어보인다. MBK와 메리츠측은 지난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이 마련한 긴급 간담회에서 여당의 압박에도 긴급운영자금 투입에 대한 양보안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홈플러스 직원들에게 1인당 최대 2100만원씩 체불임금 대지급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조치로, 특별히 홈플러스를 위한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홈플러스 영등포점 식료품 코너에 식료품 대신 의류 할인판매 매대가 설치돼 있다. 사진=조하니 기자

이러한 상황에서 홈플러스 노동자보다 더 외면받고 있는 피해자들은 입점점주들이다.

11일 현재 강서점과 영등포점에는 일부 외식점포를 제외하면 80~90% 가량의 입점점포들이 운영을 계속하고 있지만, 경기 북수원점 등 지방 점포들은 이미 상당수 입점점포들이 인근 다른 상가로 빠져나갔다.

문제는 이들이 홈플러스에 입주했을 때 납부했던 ‘점포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점포 보증금은 식음료·리빙 업종 입점업체들이 향후 임대계약 종료시 매장설비의 원상복구 등을 보증하기 위해 내는 보증금으로, 임대계약 종료 후 돌려받는다. 홈플러스입점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약 8000곳의 입점업체가 평균 2000만원씩 보증금을 냈다.

그러나 입점점주들에 따르면 이 점포 보증금은 이번 회생 과정에서 납품업체의 물품대금과 같은 ‘상거래채권’이 아니라 ‘회생채권’으로 분류됐다.

상거래채권은 우선변제 대상이 돼 이미 상당수 지급이 완료됐지만, 점포 보증금은 당장 매장 운영에 필요한 돈이 아닌 ‘묶여있는 돈’이라 후순위 변제 대상이 회생채권으로 분류됐다는 설명이다.

영등포점의 한 생활용품점 입점점주는 “이미 홈플러스를 떠난 점주는 물론 아직 남아있는 점주도 점포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회생절차 진행중이던) 지난 1년간 장사가 안돼 적자도 막심했는데 내가 냈던 2억원의 점포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할 상황이라 나도 시설 원상복구를 안하고 나갈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 점주는 “정부는 임금체불 직원에 대한 대지급금 지급과 별도로 협력업체에도 긴급운영자금 대출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모든 입점업체가 아닌 일부 영세 입점업체에 한정돼 실효성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홈플러스의 인위적인 회생에 부정적인 시각이다. 이미 1인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로 가족단위 고객 방문으로 호황을 누렸던 대형마트는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이마트, 롯데마트 등은 신선식품 강화, 콘텐츠 강화 등 변신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홈플러스는 유통 전문기업도 아닌 사모펀드가 인수해 운영하면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는 변신을 꾀하는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이형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