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로고(사진=로이터/연합)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 소식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들썩였지만, 정작 회사가 공개한 재무제표에서는 AI 산업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폭발적인 매출 성장에도 천문학적인 투자 부담을 떠안고 있는 데다, 미래 수요가 예상보다 조금만 둔화해도 기업이 파산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면서다. 이에 따라 이번 IPO가 글로벌 AI 투자 열풍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앤트로픽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를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공식 상장 절차에 들어갔다.
앤트로픽은 다음 달 나스닥 시장에 ‘ANT’라는 종목코드(티커)로 클래스A 보통주를 상장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앤트로픽의 상장 후 기업가치가 최대 2조달러(약 2700조원)에 달하고, IPO를 통해 최대 1000억달러(약 133조원)를 조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역대 최대 규모의 IPO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기술 리서치 총괄은 “이번 IPO는 투자자들이 AI 경제를 이끄는 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사실상 첫 번째 중대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식에 27일 아시아 증시는 AI 관련주를 중심으로 상승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코스피는 전장 대비 3.74% 오른 5673.87에 거래됐다.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4~6% 안팎의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장중 한때 8.31% 급등하기도 했다.
전날까지 3거래일 연속 하락했던 일본 닛케이225지수 역시 약 2% 상승했다. 반면 대만과 중국의 반도체주는 종목별로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그동안 글로벌 증시에서는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지를 둘러싸고 우려가 커져 왔다.
하지만 앤트로픽의 증권신고서 공개가 이러한 불안감을 완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앤트로픽이 AI 제품을 통해 막대한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향후 반도체 및 관련 장비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상당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타이거브로커스의 제임스 우이 수석 시장전략가는 “앤트로픽의 증권신고서는 AI 산업이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안도감을 제공했다”며 “앤트로픽은 IPO를 통해 조달할 자금을 제외하더라도 지난 6월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1120억달러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사업 확장을 뒷받침할 상당한 재무적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 매출 14배 폭증했지만…천문학적 투자 부담은 여전
그러나 앤트로픽의 재무제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6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매출 증가율이 1000%를 웃도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다만 최근 들어 성장 속도는 둔화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전 분기 대비 매출 증가율은 올해 2분기 약 140%에서 3분기 45% 수준으로 낮아졌다.
막대한 손실도 발생했다. 앤트로픽은 지난해 약 420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무려 807억달러의 순손실을 냈다.
다만 올해 상반기 순손실 가운데 약 724억달러는 전환사채와 파생상품 등의 가치 변동에 따른 회계상 손실로, 영업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과는 구분된다.
실제 영업손실은 6억9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줄었으며, 일부 비용을 제외한 조정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18억5000만 달러 적자에서 16억2000만 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문제는 앤트로픽이 향후 감당해야 할 투자 부담이 막대하다는 점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앤트로픽이 아마존과 구글 등 협력사들과 체결한 컴퓨팅 관련 계약 규모는 6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블룸버그 역시 앤트로픽이 지난해 말 이후 컴퓨팅 및 인프라 용량 확보를 위해 체결한 투자 약정이 4170억 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계약 기간은 1년에서 최장 20년에 이른다.
이러한 투자 구조는 향후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막대한 매출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천문학적인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실제 AI 수요가 예상만큼 증가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스워스 다모다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재무학 교수는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누구도 5년 뒤 AI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매출을 올릴지 확신할 수 없다며 “그들 역시 당신이나 나만큼이나 앞날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사진=AFP/연합)
◇ “성장률 예상 빗나가면 파산”…AI 산업의 위험한 역설
앤트로픽도 약 400쪽에 달하는 증권신고서에서 전체의 4분의 1가량인 94쪽을 ‘위험 요인’ 설명에 할애했는데, 그 첫 번째로 기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을 지목했다.
앤트로픽은 “우리의 성공은 가장 진보되고 뛰어난 성능을 갖춘 AI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능력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며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적었다.
이 밖에도 정부의 감시와 규제 강화로 새로운 AI 모델 출시가 지연되거나 무산될 가능성, 자사 기술이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가능성 등까지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다.
앤트로픽은 여러 위험 요인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나의 위험이 현실화하면 다른 위험을 악화시키거나 새로운 위험을 촉발할 수 있으며, 그 복합적인 충격이 개별 위험의 영향을 크게 웃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모데이 CEO 역시 이러한 사업 구조의 위험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올해 초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AI 산업이 아마존이나 메타처럼 초기 대규모 투자를 거쳐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모데이 CEO는 “성장 속도에 대한 예측이 단 1년만 어긋나거나 연간 성장률이 10배가 아니라 5배에 그친다면 회사는 파산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 AI 산업 규제 강화, 치열해지는 AI 모델 경쟁, 신생 기업 등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위험과 기업의 존속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데다 앤트로픽이 아직 비교적 신생 기업이라는 점까지 겹치자 투자자들은 이 회사 사업의 성장 가능성과 하방 위험을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르네상스캐피털의 맷 케네디 수석전략가는 “앤트로픽은 지난 여름보다 훨씬 어려워진 IPO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투자자들은 지금처럼 기업가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부 투자자들은 앤트로픽의 기업가치를 보다 신중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일부 기존 및 잠재 투자자들은 앤트로픽의 기업가치를 약 1조5000억 달러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현재 거론되는 약 2조달러보다 25%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앤트로픽의 IPO는 단순한 초대형 기술기업의 상장을 넘어 글로벌 AI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IPOX의 루카스 뮐바우어 리서치 연구원은 “앤트로픽의 IPO는 주요 AI 개발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확립할 것”이라며 “향후 다른 기업들의 상장뿐 아니라 AI 인프라 구축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업들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