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국에서 만난 미중 정상(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을 맞아 파격적인 환대를 선보인 가운데 미국과 중국이 무역 휴전을 2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나가 시 주석 부부를 영접하는 등 이례적인 예우를 제공한 직후 양국이 관세 갈등의 확전을 피하기로 하면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긴장 완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미국과 중국이 양국 간 무역 휴전을 2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에 따라 지난해 체결된 미중 무역 합의의 시한은 내년 1월 10일까지 연장된다. 양국은 지난해 세계 1·2위 경제대국 간 관세 수준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무역 휴전에 합의한 바 있다.
베선트 장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더 큰 규모의 합의가 성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역 휴전 연장 발표는 시 주석이 미국 땅을 밟은 것과 거의 동시에 나왔다.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이날 오후 6시 직전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직접 앤드루스 기지로 나가 시 주석 부부와 악수하며 영접했다. 교황을 제외하고 미국 대통령이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외국 정상을 직접 맞은 사례는 1962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과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함께 싸운 오랜 동맹국인 영국의 해럴드 맥밀런 총리를 앤드루스 기지에서 직접 영접했다.
다만 이번 시 주석에 대한 환대와 보다 비슷한 역사적 사례로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을 영접했던 사례가 꼽힌다.
▲(사진=로이터/연합)
이날 미중 정상 모두 환한 미소를 띠며 악수했다. 시 주석 부부가 남녀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공항에 나온 양국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레드카펫을 함께 걸어 나올 때까지 두 정상은 계속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레드카펫 위에서 미 공군 군악대가 양국 국가를 연주하는 동안 잠시 멈춰 섰고, 연주가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스킨십으로 친분을 과시했다.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예포가 발사됐고 미 B-1 폭격기 2대가 상공을 비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시 주석을 예우한 것은 지난 5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성대한 환영을 받은 데 대한 답례 성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던 5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공식 환영식에서 시 주석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바 있다. 다만 그 전날 그가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할 당시 나온 중국 측 대표는 한정 국가부주석이었다.
아메리칸대학교의 중국 전문가인 조세프 토리지언은 “이번 장면은 백악관이 기존 관례를 깨면서까지 정상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시진핑에게 강력한 존중의 메시지를 보내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 명확한 사례로 보인다”며 “국제정치의 상당 부분이 개인적 관계에 달려 있다고 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신념과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조너선 친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최대 지정학적 경쟁국에 이처럼 존중을 표시하기 위해 전례 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고 밝혔다.
통상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공식 환영 행사를 열어 외국 정상을 맞는다. 시 주석이 2015년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에도 공항에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나와 시 주석의 항공기를 맞았다.
▲(사진=AFP/연합)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환대는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대등한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자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장면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특히 이번 방문이 외교 의전상 최고 수준인 ‘국빈 방문’으로 성사된 데는 시 주석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 주석 측은 이번 방미를 국빈 방문으로 규정할 것을 미국에 요구했고, 양측은 이를 놓고 수주간 협상을 벌인 끝에 미국 측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WSJ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자신이 중국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레드카펫’ 대접을 제공함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중국 측 역시 국빈 방문이라는 형식을 중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정책 자문가들은 시 주석이 이번 방문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대등한 대우를 받는 중국 지도자의 이미지를 자국민에게 각인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중 간 근본적인 갈등을 해소할 만한 중대한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낮다. 무역과 대만 문제부터 AI 패권 경쟁 등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두 정상이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 주석은 당초 예상과 달리 중국 기업인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을 대동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대규모 기업 투자나 구매 계약과 같은 상징적인 경제 성과가 발표될 가능성도 낮아졌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애덤 패러는 “두 정상회담의 목표 차이는 극명하다”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냉전의 흐름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희망을 갖고 흐루쇼프를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긴장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상회담을 위해 시 주석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두 정상은 24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과 국빈 만찬을 함께한다. 시 주석은 25일까지 2박 3일의 국빈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미국을 떠날 예정이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