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집권 1·2기를 통틀어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공화당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민심이 악화한 가운데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마저 경합주로 떠오르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대만의 대규모 투자 및 구매 계획을 앞세워 표심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 대한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각종 지원을 약속하며 중간선거 표심 잡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현재 알래스카에서는 공화당 소속 댄 설리번 현역 상원의원과 민주당 소속 메리 펠톨라 후보가 맞붙고 있다. 알래스카는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이지만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려는 공화당의 핵심 방어 지역으로 떠올랐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건설에 대한 한국과 대만의 투자 및 구매 계획부터 농촌 지역의 광대역 인터넷망 구축과 데이터센터 개발을 위한 수백만달러 지원까지 다양한 공약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최근 알래스카주 와실라에서 열린 선거 유세 현장에서 연방 대기오염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던 자동차 정비업체 운영자 2명을 즉석에서 사면하기도 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백악관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사실상 확정된 사업인 것처럼 홍보하면서 사업이 실현되면 가구당 에너지 비용을 1400달러 절감하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적인 투자를 유치하고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며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돌려 놓은 입증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다”며 “이제 성공적인 무역 협상 덕분에 우리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과 대만으로부터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역사적인 규모의 투자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알래스카 LNG 사업에 54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과도 800억달러 규모의 LNG 장기 구매 계약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공화당은 알래스카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책이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쏟아낸 각종 약속이 실제 표심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대만 정부가 투자 및 구매 계약의 확정 여부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데다 알래스카에서도 LNG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댄 설리번 상원 의원(사진=AFP/연합)
알래스카 주지사 비서실장을 지낸 정치 전략가 스콧 켄달은 “파이프라 건설은 모든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지만 주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1980년대부터 여러 세대에 걸쳐 파이프라인 건설을 약속받아 왔기 때문”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이어 “중요한 사안이며 사람들이 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것이 누구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돼 왔으며 주민 약 80%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막대한 건설 비용 탓에 수십 년 동안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투자 약속 역시 그동안 실현되지 못한 수많은 개발 공약 중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뿐 아니라 미국 전체 유권자들에게 제시한 다른 약속들도 실현되지 않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의회 승인이 필요한 국민 1인당 5000달러 지급 약속을 비롯해 이란과의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반복적인 확언, 각종 물가가 조만간 하락할 것이라는 약속 등이 포함된다.
공화당의 한 베테랑 홍보 전략가는 “많은 유권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그저 또 다른 정치인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며 “그의 약속 대부분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실제로 이행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당시 합의가 이뤄졌고 전쟁이 신속히 끝날 것이며 휘발유 가격도 내려갈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상당한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화당에 투표하면 50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은 극도로 공허하게 들린다”며 “심지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핵심 지지층조차 이를 제대로 믿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부정평가 추이(사진=로이터)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악화하면서 공화당의 중간선거 전망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로이터통신이 발표한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1%로 집계됐다. 이는 2주 전보다 1%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집권 1·2기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등록 유권자의 47%가 민주당을 선택했다. 공화당을 선택한 응답자는 35%에 그쳤다.
양당의 격차는 12%포인트로 이번 선거 주기에서 가장 크게 벌어졌다. 2주 전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44%, 공화당이 37%로 격차가 7%포인트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는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68%에 달했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37%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경제 운영을 더 잘할 정당을 묻는 질문에서도 민주당이 40%의 지지를 얻어 공화당(33%)을 앞섰다.
로이터는 이번 조사 결과가 민주당의 상·하원 다수당 탈환에 대한 기대를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상원이나 하원 중 한 곳이라도 다수당 지위를 잃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2년 임기 동안 국정 운영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한편, 이번 조사는 미국 성인 167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진행됐다. 이 가운데 등록 유권자는 1279명으로, 표본오차는 전체 응답자 기준 ±2%포인트, 등록 유권자 기준 ±3%포인트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