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챗GPT
일본 정부가 엔화 방어를 위해 이틀 연속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엔/달러 환율이 하락세(엔화 가치 상승)를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이 공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하는 가운데 추가 개입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지난주 달러당 157.58엔에 거래를 마쳤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30일 163엔대에서 159엔대로 급락한 데 이어 전날에는 157엔대로 추가 하락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이 지난달 30일에 이어 전날에도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화를 매수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0일 개입 규모가 약 8조4500억엔에 달해 하루 기준 사상 최대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원화도 같은 시기 강세를 나타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30일 1418원까지 떨어지며 2025년 10월 이후 약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전날에는 1442원대로 다시 오르며 하락폭을 되돌렸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30일 한국과 일본 외환당국이 동시에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시장 개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국내 한 외환 딜러는 “양국 정부가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혀온 만큼 한국과 일본이 함께 시장 개입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일본의 엔화 방어를 지원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자 시장에서는 한미일 외환당국이 이례적으로 공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달 30일 주요 금융기관을 상대로 이른바 ‘레이트 체크’를 실시했다. 레이트 체크는 당국이 환율과 거래 상황을 점검하는 절차로, 통상 실제 개입의 전조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미 재무부를 대신해 유로화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했다며 “미국과 일본 양국이 약 30년 만에 공동으로 시장에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전날 일본 엔화는 유로화 대비 1% 강세를 보였다.
일본의 외환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미무라 아쓰시 재무성 재무관은 미국과의 공동 개입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심리적 지원을 넘어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관련 당국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문지성 재정경제부 국제경제관리관도 로이터와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미국과 일본과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주재한 각료회의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장에 ‘해야 할 일: 일본 엔화 50억~100억달러 매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사진=로이터/연합)
◇ 美 “향후 조치 대비하라”…추가 개입 가능성
미국 정부가 일본의 엔화 방어를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만큼 일본 당국의 추가 개입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일본이 다시 시장 개입에 나설 경우 한국도 추가 공조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로이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주재한 각료회의 도중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장에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이 적힌 사진을 공개했다. 제목 아래에는 ‘일본 엔화 50~100억달러 매수'(Buy Japanese Yen (JPY) $5-10 bil)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사진은 미 동부시간 기준 31일 오전 11시 33분께(한국시간 1일 새벽 0시 33분) 베선트 장관의 어깨 너머에서 촬영됐으며, 메모장 위에는 그의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또 로이터에 따르면 해당 사진이 촬영되기 약 2시간 전, 미 재무부는 일부 은행에 엔화 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며 “향후 조치에 대비하라”고 통보했다. 해당 통보는 뉴욕 연은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선트 장관은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일본은행 정책위원회는 통화 및 금융 안정을 위해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미국과 일본은 앞으로도 긴밀한 관계와 긴밀한 공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MUFG의 리 하드먼 외환전략가는 “뉴욕 연은의 레이트 체크는 시장 참가자들의 추가 개입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싱가포르 TD증권의 알렉스 루 이코노미스트도 “시장 참가자들은 후속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경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4일간 엔/달러 환율(주황색), 엔/유로 환율(검은색) 흐름(사진=블룸버그)
◇ 엔화 환율 전망 의견 분분
시장에서는 미국과의 공동 개입이 장기화한 엔저(円低)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미국이 참여한 공동 외환시장 개입은 약세를 이어오던 엔화 흐름을 되돌릴 만큼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스펙트라마켓츠의 브렌트 도널리 전략가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1985년 이후 미국 등 주요 7개국(G7)과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사례가 다섯 차례 있었으며, 대부분 달러·엔 환율의 추세가 전환되는 시점과 맞물렸다.
다만 전문가들은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엔화 강세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에버코어 ISI는 미·일 금리 격차가 유지되는 한 외환시장 개입 효과는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도 시장 개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엔화 약세를 해결할 지속 가능한 해법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일본은행은 전날 기준금리를 연 1%로 동결하면서도 기조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목표치를 웃돌 수 있다고 처음으로 경고해 오는 9월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안드레 드 실바 MLIV 거시경제 전략가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 확대는 높은 수준의 엔/달러 환율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며 “우에다 총재가 물가 상승 위험을 경고했지만 기존 긴축 정책의 영향과 중동 정세, 인공지능(AI), 환율 움직임 등을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강조한 만큼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