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공지능(AI) 서버용 메모리 수요 확대에 힘입어 SK하이닉스가 또 한 번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률은 76%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반도체·빅테크 기업을 통틀어도 손꼽히는 수익성을 기록했다. 다만 워낙 높아진 시장 눈높이 탓에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증권가 예상치(컨센서스)에는 못 미치는 ‘어닝 미스’를 냈다.
SK하이닉스는 29일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 당기순이익 93조922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56.8%, 영업이익은 557.2%, 순이익은 1242.5% 늘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매출은 50.9%, 영업이익은 61%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76%로 1분기(72%)보다 4%포인트(p) 높아졌다. 앞서 SK하이닉스는 1분기에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한 바 있는데, 이번 분기 실적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47조2063억원)을 단 한 분기 만에 넘어섰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131조895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원대를 돌파했다. 누적 영업이익은 98조1529억원, 누적 순이익은 134조2685억원으로 집계됐다.
◇ 어닝 미스에도 최고 수익성…배경엔 HBM 비중과 장기계약
역대 최대 실적이지만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증권가 컨센서스(매출 84조원, 영업이익 64조원 안팎)에는 미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우선 SK하이닉스는 경쟁사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비중이 커, 최근 범용 메모리 가격 급등이 이끈 이익 수직 상승의 수혜를 상대적으로 덜 봤다고 본다. 또 D램·낸드 가격이 수개월째 오르며 고점에 다다르면서 2분기 단가 상승폭 자체가 1분기보다 둔화됐다. 범용 D램 상승률은 1분기 60% 중반에서 2분기 약 30%로, 낸드는 70% 중반에서 50% 중반으로 낮아졌다. 여기에 대형 고객사와 맺은 장기공급계약(LTA)으로 판매가격 일부가 고정되면서 가격 상승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 측면도 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LTA로 묶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영업이익률 76%는 마이크론(81.2%)에 이어 글로벌 빅테크 중 2위권으로, 엔비디아(65.6%)와 TSMC(60.3%)를 웃도는 수준이다. 2분기에는 2018년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을 통해 투자했던 키옥시아 지분 일부를 처분하며 영업외이익 62조1660억원이 추가로 발생, 세전순이익이 122조7083억원까지 늘었다. 현금성 자산은 전 분기 말보다 33조6000억원 늘어난 88조원, 차입금은 7000억원 줄어든 18조6000억원을 기록해 순현금이 69조4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최근 ‘AI 버블론’과 ‘피크아웃(정점론)’ 우려로 반도체주가 조정을 받아온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가 아직은 네 살짜리 어린아이인데 성인이 되려면 메모리가 쓰일 수밖에 없다”며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강조한 바 있다.
▲SK하이닉스가 나스닥 ADR 거래를 개시한 10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스퀘어 아나몰픽 전광판에 SK하이닉스의 대표 제품 HBM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HBM4 하반기 본격 확대…10여 곳과 장기계약, 3분기 78조 전망
SK하이닉스는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 형태로 진화하면서 AI 메모리뿐 아니라 일반 메모리 수요까지 함께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핵심 고객을 포함해 10여 개 고객사와 장기공급계약(LTA) 협상을 마무리했고, 다른 주요 고객과도 추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6세대 HBM인 HBM4는 2분기 양산 출하를 시작해 하반기 생산을 본격 확대한다. 회사는 “HBM4는 고객이 요구하는 동작 속도를 구현하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전력 효율과 원가 경쟁력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후속 제품인 HBM4E는 상반기 중 주요 고객사 샘플 공급을 마쳤고, 기술 성숙도와 양산 안정성을 고려해 적용 공정을 확정했다. 차세대 서버 모듈인 SOCAMM2도 2분기 판매가 크게 늘었으며, 10나노급 6세대(1c) 공정을 적용한 제품 공급이 본격화됐다. 낸드에서는 321단 제품이 이미 전체 생산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연말까지 국내 생산능력의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투자도 속도를 낸다. 충북 청주 M15X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내년 초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클린룸 가동에 맞춰 설비를 신속히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첨단 패키징 공장 P&T7과 낸드 생산기지 M17, 신규 클러스터 조성 등 중장기 투자는 고객 수요와 투자 효율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회사는 고객 수요가 공급 역량을 웃도는 상황에서,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하는 능력이 앞으로 사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하반기 실적이 더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분기 SK하이닉스 매출은 약 100조원, 영업이익은 7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신형 AI 가속기 ‘베라 루빈’ 양산이 본격화하면서 여기에 탑재되는 HBM4 매출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AI 에이전트 활용도가 높아지며 메모리 수요가 더 커지는 데다, 하반기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까지 겹치면 메모리 공급 부족은 한층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일선 CXO연구소장은 “AI가 아직 초입 단계이기 때문에 반도체 수요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하반기 실적도 나름대로 선방할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는 “실적이 좋다고 해서 이게 바로 주가에 반영되기는 당분간 힘들 수도 있다”며 환율 변수와 최근 투자자 관심을 끌고 있는 중국 반도체 업체의 부상, 여름철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 여력 약화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어 “6월보다 점점 내려가고 있는 추세인데 실적 말고 뭔가 더 획기적인 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다”며 “당분간은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