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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한국마저”…美 국채 파는 동맹들, 트럼프 어쩌나 [이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연합)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이 미 국채 매입을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과 대만이 미 국채를 순매도하고 일본도 매입 규모를 급격히 축소하는 등 아시아 주요 우방국들의 자금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미 국채금리에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블룸버그통신이 미 재무부와 국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과 외교적으로 가장 밀접한 국가 및 지역의 올해 1~8월 미 국채 순매수 규모는 1743억달러(약 233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급감한 것으로, 2021년 이후 같은 기간 기준 최저 수준이다.

이번 분석은 최초 발행 당시 만기가 1년을 초과하는 미 국채를 대상으로 했으며, 57개 국가 및 지역의 정부와 민간 투자자들이 매입한 금액에서 매도액을 차감한 순매수 규모를 집계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세계 최대 미 국채 해외 보유국인 일본의 올해 1~8월 순매수 규모는 3억8900만달러(약 52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무려 99% 감소한 수준이다.

한국은 같은 기간 미 국채를 238억달러(약 31조원) 순매도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7년 이후 같은 기간 기준 최대 순매도 규모다. 대만 역시 미 국채를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국가 가운데 중국이 가장 많은 미 국채를 순매도했으며 한국과 벨기에가 그 뒤를 이었다. 다만 벨기에의 경우 중국 투자자들의 계좌가 일부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반면 영국과 홍콩, 인도는 미 국채를 가장 많이 순매수한 국가 및 지역으로 집계됐다.

▲올해 주요 국가별 미 국채 매수/매도 규모 추이. 단위는 10억달러(사진=블룸버그)

블룸버그는 이러한 자금 흐름의 배경으로 자국 통화 가치 하락과 국내 채권금리 상승, 주식 투자 수요 확대, 미국 정책에 대한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아시아 주요국들은 무역 등을 통해 벌어들인 잉여 자금을 달러로 환전한 뒤 미 국채에 투자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아시아 통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달러화 자산을 매입할 여력이 줄어들었다.이에 각국 정부는 자국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실제로 일본 엔화 가치는 약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관련 통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 방어에 나서는 과정에서 지난여름 미 국채를 비롯한 일부 증권을 매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한국 원화 가치 역시 한때 2009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반등했다.

미국 이외 국가들의 채권금리 상승도 미 국채 매입을 줄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일본 국채금리가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면서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익률은 축소됐다.

양주경 키움자산운용 글로벌채권 부문 총괄은 미 국채 투자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 국채를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마켓츠 라이브(MLIV)의 안드레 드 실바 전략가 역시 높은 달러 자금조달 비용이 미 국채 투자 수익률을 잠식하는 반면 일본 국채는 금리 상승으로 투자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미 국채 대신 주식 등 다른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미 재무부 관료 출신인 브래드 세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한국 투자자들이 채권보다 주식을 선호하는 반면 대만의 자금은 주식과 예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는 일부 미국의 우방국들이 미 국채를 대규모로 순매수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 방향에 대한 불안감도 미 국채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테이트스트리트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마사히코 루 수석 채권 전략가는 “미 국채시장이 해외 매수자를 잃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매입하던 투자자들을 잃고 있다”며 “미국의 정책이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미 국채에 높은 비중을 배분하거나 잉여 자금을 자동적으로 재투자하는 관행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국채시장의 구조적인 위험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정부 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더욱 의존해야 하지만, 과거 안정적으로 미 국채를 매입했던 우방국들의 역할은 점차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미국 국채시장을 둘러싼 불안에 대해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1월에는 그린란드 문제를 두고 유럽이 미국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미 국채를 매도할 경우 “대대적인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 8월 미 국채금리가 급등했을 당시에는 채권시장 변동성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면서 “미국 경제는 강하며 금리는 인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헤지펀드와 은행, 뮤추얼펀드 등 민간 투자자들이 기존 매수자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으며, 이들의 미국 연방정부 부채 보유 비중은 약 70%까지 상승했다. 이는 1990년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한 수치다.

그러나 민간 투자자들은 미국 우방국들보다 국채 가격과 금리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나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면서 미 국채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도이체방크의 오모리 쇼키 일본 담당 수석 채권 전략가는 “미 재무부는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조달 가격이 얼마인지, 그리고 그 가격이 얼마나 크게 변동할 것인지에 있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