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시 못 믿겠다”…채권자경단, 연준 9월 금리인상 밀어붙이나 [이슈+]

“워시 못 믿겠다”…채권자경단, 연준 9월 금리인상 밀어붙이나 [이슈+]

▲케빈 워시 연준 의장(사진=AFP/연합)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시장은 이를 인플레이션 대응 의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물가를 반드시 2% 목표로 되돌리겠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이른바 ‘채권자경단’이 연준의 행동을 요구하는 경고를 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연 3.5~3.75%로 동결했다. 기준금리 동결은 올해 1월, 3월, 4월, 6월에 이어 다섯 번째 연속이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취임 이후로는 두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금리 동결 자체는 시장의 예상에 부합했지만 워시 의장의 기자회견은 오히려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반드시 2% 목표로 되돌리겠다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향후 금리 인상 시점이나 기준에 대해서는 명확한 신호를 내놓지 않았다.

워시 의장은 “일부 가계와 기업, 시장 참가자들은 지난 5년간의 고물가로 연준의 암묵적인 인플레이션 목표가 2%보다 높은 것 아니냐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됐다”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연준의 느슨한 물가 목표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FOMC 체제에서는 암묵적으로 높은 물가를 용인하는 목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오직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2%”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회의에서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지 않았다. 워시 의장은 “전망 기간에도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기준금리 인상은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내달 예정된 잭슨홀 경제심포지엄 연설에 대해서도 “지금은 백지 상태”라고만 언급하며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은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행사로 꼽힌다.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워시 의장은 이번에도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진=로이터/연합)

◇ 美 장기채 급등…채권자경단 “행동으로 보여라”

국채 시장에서는 장기채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쏟아졌다. 3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장중 최대 14bp(1bp=0.01%포인트) 급등한 5.23%까지 치솟으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물 금리도 7bp 오른 4.67%를 기록한 반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는 하락했다.

미 기준금리가 동결되자 단기금리는 떨어졌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장기금리는 급등했다. 통상 연준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면 단기물 금리는 상승하고 향후 물가 안정 기대가 커지면서 장기물 금리는 하락한다.

그 결과 2년물과 30년물 국채금리 격차가 확대되는 이른바 수익률곡선 스티프닝이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이번 스티프닝이 1990년대 중반 이후 FOMC 회의 직후 기준 가장 큰 폭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이 워시 의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플레이션 대응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며 국채를 대거 매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정말로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고 싶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며 “장기채 금리가 크게 오른 것은 채권자경단이 ‘당신의 말을 믿게 하려면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장기금리 급등이 단순히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만이 아니라 워시 의장의 정책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CNN 역시 “채권시장이 워시 의장의 인플레이션 대응 의지를 블러핑(허세)으로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PGIM의 로버트 소킨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신뢰를 잃게 되면 장기 국채금리가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기대 인플레이션도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며 “워시 의장과 다른 연준 인사들이 앞으로 공개 발언에서 더욱 강한 매파적 메시지를 내놓아 이번 기자회견으로 생긴 혼란을 수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연준 본관(사진=로이터/연합)

◇ 시선은 9월 FOMC로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한 이유를 둘러싼 비판도 이어졌다.

울프리서치의 스테파니 로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워시 의장은 ‘오늘 금리를 올리지 않은 이유는 앞으로 몇 달 안에 인플레이션이 둔화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9월에는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설명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대신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금리 동결 배경으로 채권시장을 언급하며 “지난 42일 동안 연준이 정책적으로 크게 한 일은 없지만 시장은 상당한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장기채 금리 상승이 금융여건을 긴축시키면서 시장이 연준을 대신해 정책 효과를 내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모네터리폴리시 애널리틱스의 데릭 탱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여건이 긴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라며 “이는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 의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반영한 결과에 가깝다. 이를 자랑할 일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번 FOMC를 계기로 9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오는 9월 회의까지 금리 인상을 지지하는 위원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워시 의장도 결국 이를 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이번 회의에서는 FOMC 위원 12명 가운데 3명이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주장하며 소수 의견을 냈다. 이는 지난 6월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을 결정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역설적으로 연준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만큼 다른 조건에 큰 변화가 없다면 9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9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65.2%로 반영하고 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