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엔 ‘주가 누르기 방지법’…금융당국 “취지는 공감, 설계는 신중해야”[자본법안 와치]

이번엔 ‘주가 누르기 방지법’…금융당국 “취지는 공감, 설계는 신중해야”[자본법안 와치]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주가 누르기 방지법’ 입법과제 토론회 참석자들 [사진=최태현 기자]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가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주가 누르기 방지법’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자회사가 수백 개에 이르는 대기업집단은 순자산가치를 정확히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상속세에 해당하는 지분을 시장에 팔지 않고 신탁에 담아 배당으로 세금을 나눠 내는 방안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VIP자산운용은 상·증세법 개정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유인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1년 넘게 국회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최근 대통령이 직접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발언한 만큼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기 위해 풀어야 할 쟁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시장 가격이 있는데도 세법으로 다르게 평가하는 게 맞는지, 세법 개정만으로 저평가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지배구조가 복잡한 대기업은 순자산가치를 어떻게 계산할지, 기준선을 살짝 피해 가는 편법은 어떻게 막을지가 앞으로도 계속 다뤄질 쟁점으로 꼽혔다.

상속·증여 때만 낮아지는 주가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상장주식 가치를 평가 기준일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간의 평균 시가로 매긴다. 회사 자산보다 시가가 낮아도 그대로 인정된다. 그러다 보니 상속·증여를 앞둔 대주주는 그 시기에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게 세금을 줄이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배당을 줄이거나 자사주를 외부에 넘기는 식으로 주가 상승을 억제해도, 시세조종과 달리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이소영 의원이 지난해 5월 상증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핵심은 상장주식에도 비상장주식처럼 순자산가치의 80%를 하한선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순자산가치 대비 시가 비율(PBR)이 0.8배 미만인 상장기업은 전체의 약 40%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 하한선 아래로는 시가가 아무리 낮아도 순자산가치의 80% 수준으로 평가해 세금을 매긴다.

다만 법안은 발의 후 1년 넘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최근 정부의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 관련 검토 내용이 담기고 대통령도 신속 입법을 주문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낮은 주가가 대주주에게 이득”…현장에서 본 저평가 구조

발제자로 나선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투자 현장 사례를 소개했다. 코스피 지수는 1년 전에 견줘 3200에서 6500으로 2배 뛰었지만, 개별 종목으로 보면 오히려 저평가된 기업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수 상승 자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된 착시를 주지만, 개별 종목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싼 회사들이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반도체 관련 5개 종목을 빼고 계산하면 지수는 1년 전보다 낮다고도 지적했다.

김 대표는 배당 없이 현금만 쌓아두거나, 승계를 앞두고 갑자기 실적이 나빠지거나,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상장사 밖으로 빼내는 사례를 들며 낮은 주가가 대주주에게 유리한 구조를 설명했다. 부동산을 다량 보유한 회사, 가족 회사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는 회사, 대주주 사망 전후로 실적이 급락했다가 상속이 끝나자 회복된 회사 등 기업명을 밝히지 않은 네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 개별적으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결국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구조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항상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되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대주주는 노를 저었는데 소액주주는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저은 셈, 한 배를 탄 동상이몽”이라고 비유했다.

법적 근거는 “비상장주식과의 형평성”

또 다른 발제자인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리적 배경을 짚었다. 비상장주식은 이미 2017년부터 순자산가치 80% 미만으로는 평가하지 못하도록 하한선이 적용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같은 원칙을 상장주식에도 적용하자는 것으로,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낮은 주가를 처벌하고 그 주가를 억지로 어딘가에 맞추자는 게 아니라, 상속·증여 이벤트가 발생할 때 주가를 떨어뜨리는 게 유리하다는 인센티브 자체를 없애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가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본시장 전반에서 확산하고 있다고도 짚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처럼, 합병 비율을 정할 때도 단순 시가가 아닌 공정가치를 반영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상·증세법이라는 게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자본시장의 문제 해결을 조정하기 위해서 세법을 고치는 것이 맞느냐”며 세법 개정만으로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중 할인 구조부터 손봐야”…대기업 계열사 사례

토론자로 나선 심혜섭 변호사는 ‘시가 평가’ 문제를 지적했다. 지주회사 구조를 가진 대기업일수록 자회사의 저평가가 지주회사로 그대로 전이되는 ‘이중 할인’ 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 자회사 가치가 지주회사 장부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고, 그 자회사 밑의 손자회사 가치 역시 자회사 장부에 반영되지 않아서다.

그는 “호화 빌딩을 보유한 자산가나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중산층은 모두 엄격한 시가 평가를 받는데, 왜 상장주식만 이런 구조적 왜곡 요인을 남겨둔 채 평가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삼성물산을 예로 들었다. 거래소가 집계하는 명목상 PBR은 1.13배로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는 자사주를 자산에서 빼지 않은 수치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생명 지분의 실제 가치를 반영해 다시 계산하면 실질 PBR은 0.54배까지 낮아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SK도 비슷한 구조로, SK스퀘어가 자체 공시한 주당 순자산가치는 약 230만원이지만 실제 주가는 100만원대 초반이라고 설명했다. 법 적용 대상을 지주회사 한 곳에만 한정하지 않고 그 아래 자회사에도 같은 기준을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소액주주 “물량 출회가 더 걱정”…신탁 대안 제시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운영하는 이상목 대표는 “저평가로 인한 소액주주들의 울분은 매일 들어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다”며, 법안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다른 각도의 우려를 제기했다.

현재 논의되는 납부 방식(현금, 주식 매각, 물납)은 모두 대주주 지분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리는 ‘오버행’ 문제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주주 지분이 30%인데 세금으로 절반 넘게 내야 한다면, 나머지 지분이 대거 매물로 나와 오히려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 대표는 대안으로 세금에 해당하는 지분을 매각하는 대신 신탁에 담아, 대주주는 의결권과 경영권을 유지하고 신탁에서 나오는 배당으로 세금을 나눠 내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또 PBR 0.8배라는 단일 기준선이 정해지면 규제를 피하려 0.81배에 맞추는 식의 편법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취지는 공감하지만 실행은 신중히”

금융당국은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행 방안에는 신중했다. 조진우 한국거래소 기업밸류업지원부장은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도입 이후 자사주 매입·소각이 지난해 각각 20조원, 21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소개하면서도, “PBR이라는 건 업종별 편차가 매우 크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일본식 자기자본이익률(ROE) 8% 기준도 경기를 많이 타는 한국 산업 구조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최대주주의 사익 목적 주가 누르기라는 의도와 목적을 구별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해외처럼 장기 보유에 대한 세제 혜택이 없어, 투자자들이 기업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는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법안의 취지와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서 보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주가 누르기가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이라고 하면, PBR이 낮은 기업만 그럴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적용 대상을 정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상장주식 평가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려 해도 자회사·손자회사가 수백 개에 이르는 대기업은 계산 자체가 방대하고 복잡하며, 정부가 시가를 부인하는 모양새가 되면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시장 신뢰도에 부정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뚜렷한 결론 없이 마무리됐지만 앞으로 다뤄야 할 쟁점은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정부 세법 개정안이 나오면 이소영 의원 발의안을 포함한 국회에 올라온 여러 안과 병합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 과정에 적용 대상의 범위, 대기업 순자산가치 산정 방법, 오버행을 막기 위한 납부 방식 다변화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상장주식 평가 문제뿐 아니라 중복 상장, 인수합병(M&A) 시 공정가액 산정 등 자본시장법 전반의 개정 논의와도 맞물려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주가 누르기 방지법’ 입법과제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특별위원회·이훈기·이소영 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좌장을 맡고 김정연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와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가 발제를 맡았다. 심혜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이상목 주식회사 컨두잇 대표, 조진우 한국거래소 기업밸류업지원부장,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 과장, 김만수 재정경제부 재산세제과 과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