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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이 해제한 정비구역 389곳…李정부 주택공급 핵심축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왼쪽 두번째)이 11일 신속통합기획 재개발과 모아타운 등 주민이 선택한 민간정비사업이 추진 중인 서울 용산구 서계·청파동 일대를 방문해 추진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주택 공급 기반을 둘러싸고 도시재생과 정비사업의 공과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해제된 정비구역 가운데 일부가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 공공재개발 등을 통해 새로운 정비사업에 나서면서다. 도심 주거환경 개선과 주택 공급 효과가 기대되지만 주민 간 이견과 사업성 부족, 공사비 상승 등으로 사업장별 추진 속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작성한 정비사업 보고서에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에서 정비구역 389곳이 해제된 것으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전체의 약 60%인 235곳은 법정 동의 요건에 따른 주민 요청 등으로 자진 해제된 지역으로 분류됐다.

박 전 시장은 2012년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구상’을 발표하고 사업이 장기간 정체됐거나 주민 갈등이 컸던 지역을 대상으로 출구전략을 추진했다.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 대신 기존 주거지와 지역 공동체를 보존하는 도시재생에 정책의 무게를 실었다.

당시는 부동산시장 침체와 낮은 사업성, 주민 간 찬반 갈등으로 상당수 정비사업이 사실상 멈춰 있었다. 서울시 집계상 해제지역의 절반 이상이 주민 요청 등에 따른 자진 해제로 분류된 만큼 사업 추진 동력을 잃은 구역을 정리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정비구역 해제가 누적되고 신규 지정까지 중단되면서 서울의 중장기 주택 공급 기반이 약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주거정비지수제 도입과 주민 동의 요건 강화 등이 겹치면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에서 신규 지정된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은 한 곳도 없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정비업계에서는 과거 정비구역 해제와 신규 지정 공백이 이후 규제 강화와 사업 지연 등과 맞물려 최근 착공·입주 물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비사업은 구역 지정 이후에도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이주·철거, 착공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구역 지정부터 실제 입주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정비구역 해제만을 현재 공급 부족의 단일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시 주택시장 침체와 주민 반대, 사업성 부족뿐 아니라 이후 부동산 규제와 공사비 상승, 금융 여건 악화 등 여러 요인이 공급 감소에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해제지역, 신통기획·모아타운 등으로 재추진…“주민 의사가 우선”

해제지역이라고 해서 정비사업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다. 일부 지역은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 공공재개발 등 서로 다른 제도를 활용해 정비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랑구 중화2동 299-8 일대는 과거 중화재정비촉진지구에서 해제된 뒤 2024년 서울시 모아타운 대상지로 선정돼 기존 사업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지역은 노후 건축물과 반지하주택 비율이 높고 도로와 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부족해 주거환경 개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공공재개발도 제도 도입 당시 해제지역을 사업 대상으로 열어뒀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2020년 시행한 공공재개발 후보지 공모에는 장기간 정체된 기존 정비구역뿐 아니라 정비구역 지정 요건을 충족하는 해제지역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 공공재개발은 각각 사업 방식과 요건이 다르다. 특히 모아타운은 기존 재개발 정비구역을 그대로 재지정하는 제도가 아니라 소규모 정비사업을 묶어 기반시설과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해제지역의 노후도와 면적, 주민 동의, 사업성 등을 따져 적합한 사업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뉴타운 해제지역 중 일부는 이미 신속통합기획이나 모아타운 등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며 “도심 내 주거환경 개선과 주택 공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주민 간 이견이 여전한 곳은 추진 속도에 차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해제지역의 재추진 여부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주민 의사를 꼽았다. 박 수석은 “주민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주민들이 원한다면 해제구역을 다시 정비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정비사업을 주택 공급의 핵심 수단으로 다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신속통합기획과 정비사업 통합심의 등을 통해 정비계획 수립과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2031년까지 253개 재개발·재건축 구역에서 총 31만호를 착공한다는 목표다.

신속통합기획은 주민과 자치구가 정비계획을 마련하는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도시계획과 교통·건축·환경 분야의 계획 수립을 지원하는 제도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신규 재개발지역의 정비구역 지정에 걸리는 기간을 종전 평균 5년에서 2년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울시는 신규 외곽 택지 개발에만 의존하기보다 노후 주거지의 사업성을 높여 민간 정비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노후 주거지에 경제성을 더 확보해줘 사업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방안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용적률 등 도시계획 인센티브를 통한 사업성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일 신속통합기획 재개발과 모아타운 등 주민이 선택한 민간정비사업이 추진 중인 서울 용산구 서계·청파동 일대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최근 3년간 준공된 정비사업 59곳을 분석한 결과 사업 전후 주택 수는 평균 36.4% 증가했다. 사업 유형별 증가율은 재개발 27.4%, 재건축 44.2%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또 2031년까지 착공을 목표로 관리하는 253개 구역에서 총 31만호가 착공될 경우 계획상 주택 수가 기존보다 39.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주택 철거분을 제외한 순증 물량은 약 8만7000호로 추산했다. 사업 유형별 예상 순증률은 재개발 29.7%, 재건축 48.5%다.

다만 31만호는 입주나 준공 실적이 아닌 서울시의 착공 목표이며, 8만7000호도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됐을 때를 전제로 한 예상 순증 물량이다. 실제 공급 성과는 정비계획 변경과 주민 동의, 인허가, 시공사 선정, 이주·철거 등 사업 단계별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공정관리도 행정2부시장급으로 격상했다. 25개 자치구와 함께 사업 지연 구역을 점검하고 인허가 지연과 주민 갈등, 공사비 분쟁 등 구역별 장애 요인에 대한 공정 만회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비사업을 단기간에 주택 부족을 해소할 만능열쇠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조합원 추가 분담금이 늘고, 시공사 선정이나 공사계약 변경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사업장도 증가하고 있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장기간의 사업 기간 역시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박 수석은 “주택산업은 건축비 증가와 복잡한 인허가, 사업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고위험·저수익 구조로 바뀌었다”며 “정책을 설계할 때 공급자의 마음을 읽고 사업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1만호 착공 목표에도 실제 공급은 장기전…사업성·정책 공조 관건

사업성 개선을 위해 용적률과 높이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늘어난 개발이익과 기반시설 부담, 공공기여를 어떻게 배분할지는 풀어야 할 문제다. 사업성을 지나치게 높이면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공공기여를 과도하게 요구하면 사업이 다시 멈출 수 있다. 세입자 보호와 원주민 재정착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공조도 관건으로 꼽힌다. 정비계획 수립과 주요 인허가는 서울시와 자치구가 담당하지만 금융·세제와 재건축 관련 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은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에 영향을 받는다.

박 수석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완전히 의기투합하기는 어렵더라도 불협화음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정책 방향이 엇갈리면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결국 공급 일정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비사업의 공급 효과를 둘러싼 반론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분석한 2012∼2025년 서울 정비사업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정비사업으로 건립된 주택은 31만2493호지만 기존 주택 25만9028호가 철거돼 실제 순증 물량은 5만3465호로 집계됐다.

경실련은 연평균 순증 물량이 3819호로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연평균 주택 준공 물량의 5.8% 수준이었다며 정비사업의 총 건립 물량과 기존 주택 철거분을 제외한 실질 순증 물량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 재임기의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실적도 오 시장 재임기보다 적지 않아 시장별 정책을 단순히 ‘공급 억제’와 ‘공급 확대’로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